로고


김달진미술연구소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구소언론보도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천천히 걷는 사람이 멀리 갑니다/ 김달진_미술자료 전문가

관리자

천천히 걷는 사람이 멀리 갑니다
김달진_미술자료 전문가

글_김선경·사진_김상수

- 월간 작은 숲 2007년 9월 P.88-89

“내가 하는 일이 이렇게 크게 발전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스스로 자신의 현재가 놀랍다는 듯 말하는 미술자료 전문가 김달진 소장(52세). 자신의 이름을 건 ‘김달진미술연구소’를 운영하고, 월간 〈서울 아트가이드〉를 펴내고 있는 그는 우리나라 미술자료계의 독보적 존재다.

30년 전 그는 그림을 좋아하는 평범한 청년이었다. 남과 다른 점이 있다면, 어릴 때부터 우표, 화폐, 담뱃갑 등 무언가를 모으는 걸 좋아했다는 정도다. 중학교 때 우연히 잡지에 실린 그림 한 장을 뜯어 가지면서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신문, 잡지는 물론 청계천 헌책방을 드나들며 그림에 관한 내용은 모조리 모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생각했다.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직업은 없을까.’ 그는 스크랩한 그림 자료와 함께 자기소개서를 써서 미술잡지사와 평론가들에게 보냈다. 호의적인 답장은 단 한 통도 없었다. 다음엔 수집한 자료들을 들고 당시 이경성 홍익대미술관장을 무작정 찾아갔다. 내성적인 성격의 그에게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그 인연으로 그는 현대미술관 자료담당 임시직으로 채용되기에 이르렀다. 그는 오늘날처럼 정보가 돈이 되고 힘이 되는 시대가 올 줄 어떻게 알았을까?
“미술 자료로 먹고 산다는 건 상상도 못했던 때였지요. 단지 그림이 좋고 모으는 것이 즐거웠을 뿐이었으니 일당 4,500원의 임시직이라도 감사했습니다.”

그는 미술에 관계된 것이라면 몇 줄의 신문기사도 일일이 챙겼고, 화랑가를 순례하듯 다니며 전시회 팸플릿을 모았다. 그의 가방은 늘 불룩했고, 집안에 쌓아 둔 자료가 어찌나 많았던지 집주인이 집 무너진다며 눈치를 줘서 고향집 헛간으로 일부 옮겨야 했을 정도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하찮은 종이조각에 불과했겠지만 그에게는 소중한 보물이었다. 그는 수집한 자료들을 틈틈이 분류하고 정리하며 잘못 알려진 작가의 연보, 약력, 등을 바로잡았다. 우리나라 미술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그의 저서 《바로 보는 한국의 현대미술》은 20년 동안 화랑가, 도서관, 헌책방을 뒤지고 다닌 땀의 결정체다.

“차근차근했어요. 처음부터 큰 욕심을 부렸다면 해내지 못할 일이었지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일은 끝까지 해내자, 늘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의 꿈은 마치 계단처럼 조금씩 높아졌다. 한 계단 오르면 그 다음 계단이 기다리는 식이었다. 그림을 모으는 즐거움에서 자신의 직업을 찾았고, 자료를 전문적으로 체계화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다. 미술에 대한 관심은 뒤늦게 만학으로 금속공예를 전공하게 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미술 작품에 대해 눈을 뜨고 미술자료 연구에 박차를 더했다.

〈서울 아트가이드〉 역시 우리나라 미술 전시와 화랑 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매체가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2002년 창간했다. 처음에는 초라했지만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 현대미술관, 리움 등 굵직한 화랑에서 먼저 광고 홍보를 의뢰할 만큼 인정을 받고 있다.
“일본, 홍콩 등 외국에서도 한국미술 자료에 대해 문의해 옵니다. 그럴 때면 마음이 뿌듯하지요. 앞으로 남은 꿈은 그동안 모은 방대한 자료를 DB화하여 미술자료 도서관을 만드는 것입니다.”

간혹 융통성 없다는 말을 듣기도 할 만큼 정확하고 틀림없는 사람, 김달진 소장.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세상과 돈과 타협하지 않고 살아온 그는 ‘천천히 걷는 자가 멀리 간다’, ‘작은 물방울이 모여 강물을 이룬다’는 성실의 가치를 증명하는 살아 있는 전설이다.

전체 0 페이지 0

  • 데이타가 없습니다.
[1]
수정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