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히지 않을 미술작가, 잊을 수 없는 건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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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히지 않을 미술작가, 잊을 수 없는 건물 <3>
조선일보 2008.01.22
이규현기자 kyuh@chosun.com
전영백·홍익대 예술학과장
박영택·경기대 예술대학 교수
윤진섭·국제미술평론가협회 부회장, 호남대 교수
조선일보가 김달진 미술연구소와 함께 한 설문조사 '(100년 후에도) 잊히지 않을 작가들' 시리즈 3회를 게재합니다. 1회 이우환, 김수자, 박서보, 정현, 2회 이불, 김창열, 김홍주에 이어 이번에 소개되는 작가는 설치작가 서도호, 화가 이상남, 사진가 김아타입니다. 이 설문조사에는 미술평론가, 큐레이터, 미대 교수 20명이 참여해, '국내외에서 활동을 하는 한국 생존 작가 중 미래에도 잊히지 않고 기억될 작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각각 3~5명씩 추천했습니다. 소개된 작가들은 설문조사를 통해 복수로 추천된 작가들입니다. 이 설문조사는 미술시장의 뉴스가 비대해진 오늘날 화랑이나 경매회사가 아닌 비영리 부문에 종사하는 미술 전문가들을 통해 우리 미술작가들의 미래 가치를 가늠해보자는 의도에서 기획됐습니다. '잊히지 않을…' 시리즈 4회부터는 미술 전문가 60명이 선정한 '2008 미술품 전시의 베스트 건물'을 연재합니다.
▲ 왼쪽부터 서도호, 김아타, 이상남
서도호… 세계화 시대 속에서 한국적 美 표현
동양화·디자인 그리고 조각… 다양한 표현 언어 갖춰
시류를 잘 타야 좋은 작업이다. 상업적 기회주의를 노리는 얄팍한 작업이 아니라, 시대의 화두를 포착하고 그 추상적 개념을 구체화할 수 있는 작품을 뜻하는 것이다.
그런 작가들 중, 서도호(46)는 우리 시대의 문화 정체성의 문제를 개인적 언어로 시각화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지역성과 세계화를 연결시키면서 한국문화의 고유성을 세계무대에 제대로 보여주기란 쉽지 않다. 서도호의 작업은 지나치게 토속적이지 않으면서 한국인의 주체적 입장을 당당하게 제시한다.
1997년부터 뉴욕 화단에 작업을 선보이기 시작한 그는 2000년에 첫 개인전, 2001년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 및 한국관 작가로의 초대, 그리고 이후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 및 시애틀 미술관 순회전 등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세계적 작가로 부상하였다. 서도호는 자신의 교육적 배경, 문화적 체험을 십분 활용한 작가인데, 동양화와 디자인 그리고 조각을 배우며 다양한 표현언어를 갖춘 것이 장점이다.
▲ 군번표를 이어 붙여 갑옷으로 만든 서도호의 높이 2.5m 설치작품‘군번표’는 집단 속에 묻혀 버리는 개인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삼성미술관 리움 제공대표 작업으로는 집단 속 개인의 문제를 다룬 작업과 함께, 주체와 공간의 관계를 심리적이고 은유적 영역으로 심화시킨 섬유 설치물이 돋보인다. 후자의 예로, 자신이 살았던 한국 전통가옥의 구조를 투명한 마 천으로 재현한 작품(1999), 작가의 뉴욕 작업실을 재구성해 놓은 설치물(2003) 등은 집을 소재로 주체가 겪는 문화 이동의 체험을 다루었다. 외부와 내부의 경계가 불명확한 공간을 시각화하며, 서구와 동양, 개인주의와 집단주의의 이분법적 진부함을 벗어나고자 했다. 여행가방처럼 접어 이동할 수 있는 이 작품들은 정착된 뿌리보다는 기동성과 유연성이 요구되는 현대인의 정체성을 담아냈다고 볼 수 있다.
서도호의 작업은 우리 시대의 화두인 이산(離散)이나 유목주의를 다루되 그 부담스런 무게를 덜어내고, 긍정적이며 자유롭게 표현한다는 점에서 독창적이다. 또한 되돌릴 수 없는 것에 대한 그리움과 아련한 향수가 깃들여 있어 감성적 여운이 남는다. 서도호는 세계화시대의 문화 정체성에 대한 문제를 고심하고 창조적으로 풀어가려는 작가임에 틀림없다.
전영백·홍익대 예술학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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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남… 기하학적 미학을 동양적 심미안으로 재구성
캔버스나 나무 패널 위에 흰색 아크릴 물감을 칠하고 사포로 갈아내기를 반복하여 수십 층의 물감 층을 만든다. 이 흰 화면은 단순히 색상을 표현하는 게 아니라 일종의 물질성을 드러내고 있다. 뉴욕에 거주하고 있는 화가 이상남(55)의 미학이다. 이상남의 작품은 '서구 모더니티의 기하학적 추상미학이나 기계의 미학을 새롭고 우아하게 재구성하면서 동양적 심미성으로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감싼 그림'이란 평을 받아 왔다. 매력적인 회화를 만들어내는 작가로서 그는 미래에도 기억될 것이다.
▲ 이상남의 아크릴화‘P/R’시리즈. /국립현대미술관 제공정교한 공정과정으로 회화와 디자인·사물의 경계를 교묘하게 흔든다. 반복적인 행위를 수십 차례 거듭해서 화면의 바탕을 균질하게 만들어내고 그 위에 기하학적 형상들을 놓는다. 무수한 원과 다중의 동심원들이 화면의 중심을 이루고 다시 이것들이 선으로 상호 연결된 구조를 갖는 것이다. 이 원(원은 영원, 완벽, 힘의 응집 등을 상징)과 호형(활모양) 형태들의 조합과 관계 맺음으로 이루어진 작업에 대해 작가는 "미래의 아이콘을 찾는 것"이라고 말한다. 화면 위에 흑백의 리드미컬한 반복이 아찔한 환영을 구사하고 있고 그로 인해 다이내믹한 공간이 연출된다.
이상남의 그림에는 또한 역동성과 순환성, 그리고 비한정성이라는 동양적인 시공간의 개념이 슬쩍 엿보인다. 무엇보다도 '빠른 속도감을 느끼게 하는 추상적 이미지, 동양적 캘리그래피(서예)의 운필을 연상시키는 선의 궤적, 시선의 관조적 쾌락과 명상적 가치에 관계하는 정교하고 우아하며 감각적이고 서정적인 그림'이다. 추상미술을 새롭게 해석하고 전개한 작업이다.
박영택·경기대 예술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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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타… 사진에 퍼포먼스 가미… 동양 정신 담아내
김아타(52)와 나와의 인연은 15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 날 우편으로 팸플릿 하나가 배달되었는데, 거기 쇼킹한 장면이 펼쳐져 있었다. 구불구불 산등성이를 감아 올라간 시골의 2차선 포장도로 여기저기에 나체의 남녀가 누워있는 흑백사진이었다. 어림짐작으로도 족히 예닐곱 명은 돼 보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장소가 바뀌었다. 호숫가, 바닷가, 수풀더미, 자갈밭 등등, 자연에 널브러진 남녀의 나체는 나의 뇌리에 강렬한 인상으로 각인되었다.
▲ 김아타의 사진‘뮤지엄프로젝트4’. /국립현대미술관 제공그렇게 맺어진 김아타와의 인연은 그 후 계속 이어졌다. 나는 내가 관여한 크고 작은 국내의 기획전에 그를 초대했고, 마침내 2002년 '제25회 상파울루비엔날레'에 단독 추천, 큐레이터와 작가로서 다시 만났다. 그 이후 지금까지 김아타는 세계를 무대로 종횡무진 활동의 범위를 넓히고 있다.
김아타의 진가는 세계 미술의 중심지랄 수 있는 뉴욕에서 빛났다.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사진 전문 출판사인 '애퍼처(Aperture)'가 그의 사진집을 발행하는가 하면, 사진작가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ICP(국제 사진센터)가 초대전을 열어 줬다.
김아타는 실험정신으로 무장된 전위작가다. 그는 사진에 퍼포먼스를 가미, 불교를 기반으로 한 동양 정신의 에센스를 담아낸다. 가령, 모택동을 소재로 하더라도 한국인의 시선으로 한국의 문화적 전통과 미의식에 근거하여 해석한다. 작품에 대한 그의 발상은 중국적이거나 서양적이지 않고 지극히 한국적이다.
김아타(Atta Kim). 그는 백남준의 사후, 한국 미술계를 대표하여 국제적 명성을 거머쥐고 미래에도 기억될 확실한 사진작가다.
윤진섭·국제미술평론가협회 부회장, 호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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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를 추천한 전문가들 (20명·가나다 순)
강수미 미술평론가, 고충환 미술평론가, 김복기 월간 '아트인컬쳐' 편집장, 김상철 월간 '미술세계' 편집주간, 김선정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 김영호 중앙대 미대 교수,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장, 김태호 서울여대 미대 교수, 김홍희 경기도미술관장, 박영택 경기대 예술대학 교수, 오광수 미술평론가, 윤우학 미술평론가, 윤진섭 호남대 미대 교수, 이건수 '월간미술' 편집장, 이영철 계원조형예술대 교수, 이주헌 미술평론가, 이준 삼성미술관 리움 부관장, 전영백 홍익대 미대 교수, 정준모 고양문화재단 전시감독, 최열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