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in Art
김용수 | 변호사 기자
얼마 전 한 텔레비전 방송 프로그램에서 <반갑다 친구야>라는 코너가 있었다. 심야시간대 방송이었는데도 꽤 인기가 있는 코너였다. 주로 유명연예인의 친구들이 초대되어 짧게는 10여 년 전 길게는 30~40년 전 친구를 찾는 내용이었다. 이 때 친구들은 유명연예인들이 잊어버렸던 내용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친구에게 보냈던 편지를 고이 간직했다가 가지고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함께 찍은 빛바랜 흑백사진을 들고 나와 주인공인 연예인들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하고, 서로 엇갈린 다른 기억에 대해서 여러 친구의 기억이나 편지, 사진 등을 보면서 서로 달랐던 기억이 정리되기도 하였다.
위 코너와 같이 누군가가 자기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상적인 일들이나 사건들을 기억하고 기록이나 자료를 가지고 있다면 한편으로는 고마운 일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나는 왜 그런 내용을 일기나 편지로 기록해두지 못하였을까?"하고 새삼스레 후회해 보기도 한다.
이처럼 평범한 한 개인의 일상이나 추억도 다른 사람이 기록해두고 간직해두면 살아왔던 일들을 추억으로 되새기고 앞으로 살아가는 방향을 설정하는 데 도움이 되는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예술가나 무명의 예술가들의 발자취가 모여 우리나라 근·현대 미술계의 자료로 보존되고 정리되었다면 분명 우리 미술사를 돌아볼 때 가치 있는 자료가 될 것이다.
본 변호사 기자는 한국 근·현대미술자료를 묵묵히 수집하고 보존·정리하는 데 모든 열정을 쏟아온 <김달진미술연구소>의 김달진 소장님을 만나 뵙기 위하여 그를 찾아 나섰다.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내려 김달진미술연구소를 찾아가는데 근처를 몇 번씩 헤매다가 어떤 건물 지하층에 위치한 김달진미술연구소에 도착했다.
2001년 12월 김달진미술연구소가 문을 연 이후 올해 3월에 서울시 2종 전문박물관으로 등록(제58호)되었다는 장소라고 하기엔 자료전시 공간이 조금 좁아 보인다는 인상을 받았다.
김달진 소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동안 미술자료에 관심을 가지고 수집하게된 이야기 등도 나누고 소장된 자료들도 둘러보았다.
자료는 정확성이 생명이다.
김달진 소장님이 미술과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게 된 것은 처음에는 자신이 좋아서 취미생활 정도로 시작한 일이지만, 점차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발표한 자료나 통계마저도 정확한 자료에 근거하지 않고 잘못된 자료나 오류가 있는 자료가 계속 기초자료로 사용되면서 확대되고, 유통되는 문제점을 인식하면서부터이다. 이러한 비판적인 의식을 가지고 제1차적으로 정확한 기초자료를 수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라고도 하였다.
정확한 기초자료를 수집하기 위해서 실제로 개최되는 전시회 팸플릿이나 도록 및 작가들의 전시회에 대한 관련기사나 작품에 대한 기사들을 직접 수집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직접 전시회 팸플릿 등 자료를 수집하기 위하여 돌아다녔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주로 금요일에 전시회가 많이 열렸고 금요일 날 전시회 자료 등을 수집하기 위해서 이곳저곳을 돌아 다녔다. '금요일의 사나이'란 별명을 얻은 것도 이 때문이다.
정확한 미술계의 기초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김달진 소장님이야말로 정확한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기 위하여 사초(史草)를 모으고 정리하는 사관(史官)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우리 역사에서도 사초를 기록해두었다가 이를 기초로 임금의 실록을 편찬하였으니 사초의 정확성이야말로 그 이후 이를 기초로 작성되는 모든 역사 기록의 정확성을 담보하는 것이므로 사관들은 목숨을 걸고, 있었던 일을 사실대로 기록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과거 우리 역사에서의 사초는 그 임금이 살아생전에 자신의 기록을 볼 수 없었는 데 비해 김달진 소장님이 수집하는 한국 근·현대미술사의 자료는 바로바로 정확한 자료인지를 검증하는 절차가 동시에 수반된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부정확한 자료나 통계에 관한 지적
김달진 소장님은 직접 발로 뛰면서 수집한 작가들의 전시회 팸플릿 및 도록과 관련 기사들을 근거로, 작가들의 학력이나 약력, 입상 경력 등에 대해서 과장 또는 허위로 기재되거나, 실제와는 다르게 표현하거나 작성된 것을 알면서도 방치하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서 전시회나 초대전의 정확한 명칭 등을 근거로 작가들의 부정확하거나 오해의 소지가 있는 학력이나 경력에 대해서 지적하는 글을 발표해 신선한 충격과 함께 미술작가들에게 경종을 울리기도 하였다.
「선미술」 1985년 겨울호에 발표했던 '관람객은 속고 있다. - 미술자료 기록의 허구' 및 가나아트 1997년 7,8호에 발표했던 '해도 너무한다. 누가 역사를 그르치는가'등은 부정확한 자료나 통계에 대한 비판적인 글이었다.
본 변호사 기자가 몇 가지 신문 및 간행물 기사의 복사를 요청했을 때 직원이 그대로 복사를 해오자 김달진 소장님은 기록의 출처를 일일이 확인하고 빠진 부분은 원본을 대조하며 직접 출처를 기록하셨다. 아마도 자료는 정확성이 생명이며 나중에라도 정확성이나 출처를 확인하기 위해서 몸에 밴 강박관념에 가까운 습관 때문은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서 2007년도 신정아 교수 학력 위조사건 및 연예인 및 유명인사들의 학력위조사건으로 사회적 파문이 일어났던 것도 가장 기초적인 자료인 경력, 학력 등에서 부정확한 자료가 아무런 검증 없이 수정되거나 고쳐지지 않고 확대되어 유통되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라는 점에서 바라본다면 김달진 소장님이 지적했던 문제가 우리나라 미술계에 만연했던 학력, 경력 부풀리기를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는 사회풍토나 작가의 안이한 대처에 우리 사회 전체가 혼란에 빠졌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자료의 정확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법
김달진 소장님께 얼마 전 문제되었던 이중섭, 박수근 화백의 작품에 대한 위작논란과 관련하여 작가의 작품 및 자료의 정확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법에 대해 의견을 구했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도 미술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도록이나 카탈로그 레조네가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아 위작 시비가 발생할 소지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하였다.
카탈로그 레조네(Catalogue raisonne')는 프랑스어로, 우리말로 번역을 해본다면 '책 그림의 해제가 붙은 분류 목록'이라고 할 수 있으며 어느 한 작가의 전체 작품에 대한 논문이나 화집으로서 단순히 작품 사진만을 모은 것에서부터 더 나아가 제작 시기나 재료, 기법, 소장이력, 전시이력 및 작가의 개인사까지 작품이력을 붙이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카탈로그 레조네를 만드는 일은 어느 한 작가 개인의 작품에 대한 정리일 수도 있지만 미술시장의 활성화와 작가나 작품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 일반인으로 하여금 미술작가와 작품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가교역할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며, 미술작가의 작품에 대한 위작논란을 줄이고 위작이 문제되었을 때 진위를 가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될 것이라고 한다.
수집된 자료의 보존 및 디지털화 및 데이터베이스화
우리나라 속담에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정확한 자료를 수집하였다고 하더라도 창고에 방치해두거나 적절한 보존 조치를 취하지 못하여 귀중한 자료가 손상되거나 멸실된다면 아무런 의미나 가치가 없는 것이다.
김달진 소장님께 우리나라 근·현대 미술계와 관련하여 수집된 자료의 보존 및 활용방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현재 어떻게 운용되고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활용하거나 정보를 제공할 계획이 있는지에 대해서 여쭤보았다.
김달진 소장님은 우선 off-line으로 김달진미술연구소를 통해서 자료나 정보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직접 김달진미술연구소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는 열람 및 복사 등 자료를 이용하게 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현재의 전시 공간은 약 60평 정도로 전시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5톤 트럭 한 대 분량의 소중한 자료가 있지만 충북 옥천의 형님 집에 보관하고 있으며 아직 전시나 정리가 되지 않아 자료가 훼손될 우려가 있어 큰 걱정이라고 하였다. 소중한 자료가 사장되는 마음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전시 공간이 부족하다는 점과 좀 더 넓은 전시공간이 절실하다는 사정은 직접 눈으로 보니 피부에 와 닿는 듯하였다.
on-line 상으로는 인터넷 홈페이지인 www.daljin.com을 통하여 각종 자료를 데이터베이스화하고 디지털화하여 누구나 인터넷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나 소장하고 있는 자료 중 디지털화하거나 데이터베이스화한 자료는 일부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국가에서 이 자료들을 디지털화하여 데이터베이스화하거나 아니면 어느 정도 지원을 해준다면, 김달진미술연구소에서 장비나 인력을 보충하여 영구 보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자료 수집의 범위를 넘어 수집된 자료를 디지털화하거나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일을 개인의 힘만으로 해내기란 여간 힘들지 않지만 점차 추진해 나가겠다는 열정을 보이셨다.
수집된 자료에 대한 정보의 제공
또한 합리적 보존시스템을 갖춘 아카이브를 만들 계획이라고 하였다.
아카이브(archive)란 "보존가치가 있는 기록물, 또는 보존 관리하는 기록 보존소"를 말하는데 김달진 소장님이 수집한 자료들을 디지털화하여 보다 정보에 접근하기 쉽고 이용하기 쉽게 파일들을 조직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렇게 아카이브(archive) 해놓은 파일들은 한국 근·현대미술사 연구나 논문 작성 등 이용자의 필요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로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화된 기초자료로 보존하고 이용하면 보다 신속하고 편리할 것이라고 하였다.
미술가 및 그 유족들과의 미술자료 제공에 대한 협력
직접 수집하는 미술자료만으로는 정확한 자료나 작가의 작품에 대해서 정보화하는 데 한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이에 대한 대안이나 계획하는 일이 있는지 여쭤보았다.
김달진 소장님은 우선 화랑이 밀집해 있는 인사동을 중심으로라도 '미술정보센터'를 설립하여 예술자료의 체계적 관리 및 활용방안을 모색해 보아야 할 것이며, '미술정보센터'에는 자료박물관과 열람실, 홍보관, 북카페 등을 두면 좋을 것 같다고 하였다.
또한 '미술정보센터'를 설립할 경우 제일 중요한 점이 정보에 대한 접근이 쉬워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미술자료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들고 있으며 개인적으로 미술자료를 소장하고 있는 수집가나 작가 및 그 유족들도 가지고 있는 미술자료를 박물관 등에 기증한 후에는 자신이 기증한 자료에 대한 접근도 쉽지 않아 박물관 등에 기증할 마음을 쉽게 먹지 못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정보에 대한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미술정보센터'를 설립하는 것이야말로, 신뢰성 높은 미술자료를 확보하고 이를 데이터베이스화하여 영구보존하고 필요한 사람은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방안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데이터베이스화한 미술자료의 이용
김달진 소장님이 직접 수집한 미술자료나 '미술정보센터'가 설립되어 미술작가 및 유족들로부터 제공 받은 미술자료를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에 대해서 그 계획을 여쭤보았다.
김달진 소장님은 현재 김달진미술연구소가 가지고 있는 자료, 앞으로 작가 및 유족들로부터 동의를 얻게 되는 작가의 작품이나 관련 자료들을 데이터베이스화하여 국내외적으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미술자료를 만들고 이를 기초로 하여 이용자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콘텐츠를 만들어 작가나 그 작품을 이해하는 데 보다 도움이 되게 하고,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작가들에 대한 작품세계를 재조명하여 잊혀지거나 묻혀버리지 않는 작가로 기록되어야 할 것이며, 작가들에 대한 평가는 후대에 다시 재평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작가에 대한 자료나 작품을 정확하게 기록해 두는 데 중점을 둘 생각이라고 하였다.
김달진미술연구소가 그 동안 수집하고 정리하여 데이터베이스화한 자료를 가지고 직접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일이나 사업이 있는지 여쭤보았다.
김달진 소장님은 현재 정부가 주도하는 문화예술진흥책 중에서 유명무실하거나 활성화 되지 않거나 한번 구축된 후 업그레이드되지 않은 자료를 바탕으로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현재 예술가들의 홈페이지를 김달진미술연구소에서 맡아서 운영하면서 콘텐츠를 제공하거나 기록물들을 처리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이용하기 쉽게 가공하는 작업을 관련 기관과 협의중에 있으며, 전문적인 미술서적을 구입하고자 하는 이용자와 미술서적을 출판하는 출판사들을 연결시켜주는 인터넷 쇼핑몰 <달진북닷컴(www.daljinbook.com)>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였다.
지금까지는 주로 자료의 수집과 정리에 중점을 두어왔지만 앞으로는 정리되고 데이터베이스화된 자료를 이용자들에게 쉽게 제공하고, 우리나라 미술계에 대한 자료를 신뢰성 있는 자료로 정리하고 다양한 형태의 콘텐츠를 만들어 문화적인 면에서도 선진국들과 경쟁할 수 있는 기초자료를 구축하는 데, 그동안 김달진미술연구소가 축적해 온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라고 하셨다.
본 변호사 기자는 문득 컬쳐노믹스(culturenomics)란 말이 떠올랐다.
컬쳐노믹스(culturenomics)란 '문화(culture)와 경제(economics)의 합성어로 문화가 갖는 경제적 가치'를 의미한다. 즉, 문화를 소재로 부를 만드는 현상을 말하는 것으로 문화를 알아야 경제적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의미인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도 조선왕조실록이나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 역사서 기록에서 영화나 드라마의 소재를 찾기도 하고 만화나 작가의 작품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팬시나 문구용품의 캐릭터를 만들기도 한다.
과거 유아용 교육프로그램이나 방송 및 인형 등의 캐릭터는 외국 작품의 캐릭터가 많았지만 지금은 우리 순수토종 캐릭터인 아기공룡 둘리나 뽀로로가 애니메이션이나 캐릭터 상품으로 전세계에서 호평을 받는 것도 어쩌면 문화적 소재에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김달진미술연구소가 가진 경험과 노하우로 우리나라 근·현대 미술작가의 작품이나 자료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 내고 가공하여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대하며 성원을 보내본다.
김달진미술연구소를 운영하면서 겪었던 일들 중 보람 있었던 일
김달진미술연구소는 매달 「서울아트가이드(Seoul Art Guide)」를 발행한다. 미술관과 화랑의 위치 및 전화번호, 찾아가는 길, 전시 정보 등을 싣고 있으며 또한 격월로 「ART MAP(서울전시가이드북)」를 한글판과 영문판으로 발행하여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한 번은 경북 안동의 한 교도소에서 재소자가 김달진미술연구소로 편지를 보내 "「서울아트가이드」를 보면서 수감생활 중에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으니 보내 달라."라고 한 적이 있으며 이와 유사한 사례가 몇 번 있었다고 한다. 어떤 경로로 「서울아트가이드」가 교도소까지 가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재소자들까지 읽고 있다니 한편으로는 놀랍고 한편으로는 책임감도 더 느꼈다고 하였다. 그 재소자들에게 「서울아트가이드」를 보내주었음은 물론이다.
어쩌면 한순간의 실수로 높은 교도소 담장 안에 있어도 그 마음만은 자유로워지고 싶고 마음속으로나마 문화생활을 누리고 싶은 희망으로 수감생활을 견뎌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또 외국에서 한국미술에 관심이 있는 비엔날레 관계자나 저널리스트 등이 김달진미술연구소로 전화하여 한국작가에 대한 정보를 문의하기도 하였으며 최근에는 미술평론가 오광수 선생님에 대해서 문의해 온 적도 있다고 하였다.
한국을 다녀간 외국인들이 김달진미술연구소가 격월로 발행한 영문판 「ART MAP」을 보고 문의한 것으로 생각되는데 앞으로 보다 다양한 내용을 영문으로 발행하면 외국에 우리나라 미술작가들을 알리는 계기가 될 것 같다고 하였다.
본 변호사 기자도 몇 해 전 프랑스 파리에 있는 '루브르박물관'이나 영구 런던에 있는 '대영박물관'이나 바티칸에 있는 '바티칸박물관'에 안내서가 한국어로 된 것이 없어 아쉬움을 느낀 적이 있었다. 만일 외국인이 우리나라를 방문하였을 때 김달진미술연구소가 발행하는 「서울아트가이드」나 「ART MAP」이 다양한 국가의 언어로 발행된다면 우리나라 문화와 미술을 알리는 데 좀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김달진미술연구소에 전시된 자료를 살펴보면서
김달진 소장님의 안내로 전시된 희귀본과 관련 서적 및 자료들을 살펴보았다. 일부는 유리 전시장에 전시되어있는 오래된 귀중한 자료나 책자도 있었고, 일부는 아직 정리가 덜 된, 최근 발행된 자료나 책자도 있었다.
일정 부분이 정리가 되어 있었지만 아직도 예산과 인력, 장비의 부족으로 정리나 보존처리가 덜 된 자료가 많다고 하였다. 좀 더 전시실 안쪽으로 가보니 제습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전시공간이 협소하고 예산이 적다보니, 임대료가 보다 저렴한 지하에 전시공간을 마련하다 보니, 습기가 많아 제습기를 가동시키고 있다고 하였다. 우리나라 개인 소장 박물관에 대한 현주소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못했다.
전시실 한 쪽은 「서울아트가이드」와 「ART MAP」 편집실과 사무실로 쓰이고 있었다. 그나마 조만간 편집실과 사무실 공간을 근처로 옮겨갈 예정이라고 하였다.
김달진 소장님의 작은 소망이 있다면 최근 동사무소가 통폐합되어 주민자치센터로 운영하는 과정에서 일부 동사무소가 동사무소로 사용하지 않고 있는데, 정부나 서울시에서 박물관이 공익에 기여하는 점을 고려하여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전시공간을 대여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이러한 문제로 관련기관에 문의도 해보고 직접 접촉을 해보았지만 현재로서는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하였다.
박물관은 공공재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어느 개인이 열정을 바쳐 수집한 자료를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정부나 서울시에서도 일정한 지원을 해준다면 보다 질 높은 문화적 콘텐츠를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김달진미술연구소 소장에게 '금요일의 사나이', '걸어 다니는 미술사전', '걸어다니는 자료실'등의 표현으로 그 열정과 노고에 찬사와 경의를 표하는 것만으로는 우리의 역할을 다했다고 보기에 무엇인가 부족해 보인다.
김달진미술연구소가 박물관으로 거듭나면서 다양한 미술자료들이 여러 가지 형태의 콘텐츠로 제공될 수 있도록 보다 많은 격려와 물적 지원이 병행되어야만 진정한 컬쳐노믹스로 문화적 강대국, 문화적 부를 이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요즘 연일 불볕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밤에도 기온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아 열대야 또는 초열대야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본 변호사 기자가 김달진미술연구소에서 김달진 소장님과 인터뷰를 하면서 느낀 점은 미술자료를 수집,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일에 대한 열정이 불볕더위의 열기보다 더 뜨거웠고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면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려는 의지가 나지막한 목소리 뒷편에서 흔들림 없이 버티고 서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