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 ’걸어다니는 미술사전’김달진,그는 왜 자료에 미쳤나?
관리자
김달진(53)씨는 미술계에서 '걸어다니는 미술사전'으로 불립니다. 어떤 작가가 언제 어디서 작품전을 했으며, 어떤 미술관이 언제 생겨나 어떻게 운영됐는지 그에게 물으면 단박에 '답'이 나옵니다. 이곳 저곳 힘들게 찾아보고, 물어봐도 해결이 안되는 내용들도 그 를 통하면 만사 형통입니다.
미술자료의 수집과 정리에 36년을 꼬박 바쳐온 그가 드디어 필생의 소망인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을 열고 오늘(23일) 개관전을 엽니다. 박물관이라고 해야 자신의 이름을 딴 김달진미술연구소(서울 통의동) 맞은 편에 비좁게 만들어진 공간일 뿐입니다. 그래도 정부에 박물관을 정식등록하고, 첫발을 떼는 것이 그는 무척 감개무량합니다. 김 소장이 미술자료를 본격적으로 수집하기 시작 한 것은 1972년부터입니다.
“충북 옥천에서 태어나 이렇다 할 볼거리가 없었는데 중학 때부터 잡지에 실린 명화가 너무 좋아 스크랩을 시작했어요. 고3 때는 '한국근대미술 60년전'을 찾았는데 박수근같은 유명작가 외에는 도록에 경력이 거의 기록돼있지 않은 걸 보고 그만 못말리 는 정리벽에 발동이 걸렸죠”
고교를 마치고 미술이 좋아 군대를 제대하자마자 전시전문 월간지 '전시계'에 사환 겸 기자로 입사한 그는 작고작가 인명 록 제작 등 자신의 특기를 하나둘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그의 성실함과 꼼꼼함을 눈여겨본 이경성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의 주선 으로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임시직(자료수집및 분류 담당)으로 자리를 옮겼고, 성균관대 사서교육원과 서울산업대 금속공예과를 주경야독으 로 마쳤습니다.
그 무렵 그에게 붙여졌던 별명이 '금요일의 사나이'입니다. 매주 금요일이면 과천 미술관을 나와 인사동 등지를 돌며 팸 플릿과 도록을 가방 가득 수집했기 때문입니다. 미술관으로 채 발송되지 않은 작가들의 전시도록을 인사동 현장에서 일일이 수거했던 거 죠. 무거운 가방을 매고 수십 곳을 돌다보면 어깨가 빠질 정도로 힘들었지만 미술자료 수집이 '숙명'으로 느껴졌기에 기꺼이 참아낼 수 있었습니다. 40대 초반에는 가나아트센터 자료실장을 맡았고, 대학원(중앙대)도 마쳤으나 자신이 목표하는 일에 '올인'하기 위해 2001년 맨주먹으로 김달진미술연구소를 차렸습니다. 무모했지만 밀어부친 거죠.
이후 그의 연구소에는 평론가며 기자, 학자들의 전화가 하루에도 수십여통씩 이어졌습니다. 논문을 쓰겠다며 연구소에 죽치 는 이들도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자료들을 워낙 잘 정리해온 탓에 미술에 관한 궁금증은 그를 통하면 무조건 해결됩니다. 그야말로 ' 미술컴퓨터'입니다. 2002년 9월 그가 만든 미술정보 포털사이트 달진닷컴(daljin.com)은 인기 사이트로 자리잡은지 오래고 요.
그리곤 마침내 '김달진미술연구소장' 외에 '김달진자료박물관장'이라는 또다른 직함을 명함에 새겨넣기에 이르렀습니다. 아 직은 너무 작고 옹색하지만 '이제 시작'이란 마음으로 박물관을 사료적 가치가 큰 자료들을 제대로 보존 전시하는 곳으로 꾸려갈 참입 니다.
'미술 정기간행물 1921-2008'이라는 이름으로 여는 개관기념전에는 근 한세기간 출간된 미술 정기간행물 100여종 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의 '조선미전도록'(1922)과 국내 최초로 공개되는 '이왕가덕수궁 진열일본미술품도록 3집 '(1936) 등의 희귀자료를 비롯해, 1946년 발간된 잡지 '조형예술'과 196 '공간' 창간호(1964) 같은 미술잡지도 볼 수 있습니다. 박물관 개관에 발맞춰 근대화단과 저널리즘, 미술종합지, 동인지, 미술전문지, 기관지, 그리고 학회지 등 총330종 의 자료를 조사정리해 탄생과 발간을 성격별로 분류하고, 정리연구한 자료집도 펴냈습니다. 이 모두 '못말리는 아키비스트 (archivist)'인 김 소장이 지난 30여년간 무수히 흘린 땀과 정성의 결실임은 물론입니다.
김 소장은 모두들 미술의 화려한 면만 쫓기 바쁠 때 묵묵히 자신의 일에 혼신해온 사람입니다. 그는 “지금 박물관에 있 는 18t의 자료 외에 충북 옥천 고향에 4.5t 분량의 자료가 더 있는데 제 여력으론 어떻게 할 수가 없네요. 급할 땐 너나 없 이 자료들을 찾지만 그저 그 때 뿐입니다. 지금껏 제가 모아온 자료들과, 고향집에 맡겨둔 자료들이 모두 제 자리를 찾아, 살아 숨 쉬도록 해야 할텐데 말이죠”라고 염원합니다.
흔히들 '남는 건 사진 뿐'이라고들 합니다. 미술도 마찬가지입니다. 요란했던 전시며 작품활동은 그저 순간에 그칠 뿐, 남는 건 '사진과 자료와 책자들'입니다. 이들 자료들이 잘 모아지지 않는다면 한국미술사를 어떻게 쓸 수 있으며, 한국미술을 어떻 게 국내외에 제대로 알릴 수 있겠습니까?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자료들을 오랜 세월동안 정성껏 수습해, 오늘 국내 최초의 미술자 료박물관을 출범시킨 김 소장에게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우리 미술계가 좀더 건강하고 튼실하게 성장하려면 김 소장처럼 사심 없이 미술의 기초를 다지는 '막후의 전문가'들이 좀 더 많이 필요합니다. 또 그같은 활동이 좀 더 평가받고, 지원되어야 합니다. 사실 미술자료의 수집과 정리, 데이터베이스 구축, 박 물관 운영같은 일은 개인이 하기엔 너무 벅차고 방대한 일이 아닙니까. 또 공적 영역의 일이기도 하고요. 그러니 이제 한 개인이 올 곧게 펼쳐온 작업이 탄력을 받을 수 있도록 정부와 기업이 화답할 차례입니다. 02)730-6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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