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 미쳤죠, 36년간 미술자료와 씨름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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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죠, 36년간 미술자료와 씨름했으니… 반쪽인생이에요”
입력: 2008년 11월 19일 15:24:44 [경향신문]
<최희진기자 daisy@kyunghyang.com>
ㆍ박물관 연 ‘걸어다니는 미술사전’ 김달진 씨
별명이 ‘걸어다니는 미술 사전’이었다. 국내 미술계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누구보다 꼼꼼하고 정확하게 알고 있어서다. 화가도, 교수도 아니지만 남보다 박식할 수 있었던 것은 중학생 때부터 무턱대고 모아댔던 미술 자료 덕분이었다. 미술 자료 전문가 김달진씨(53)가 지난 10월 말 서울 종로구 통의동에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을 정식 개관했다.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의 김달진 관장이 박물관에서 개관 전시 ‘미술 정기간행물 1921~2008’ 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재찬기자
미술 자료를 전시하는 사립박물관은 찾아보기 어렵다. 국·공립 기관에서도 마찬가지다. 김 관장은 국립현대미술관 자료실에서 15년, 가나아트센터 자료실에서 5년을 일했지만 자료 정리를 제대로 하고 있는 미술관을 본 일이 없다. 1985년부터 미술계의 자료 관리 실태가 얼마나 허술한지 줄기차게 글을 써서 비판했지만 사정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정부의 지원도 없이 혼자 힘으로 박물관을 열었다. 미술을 사랑했고, 미술계가 더 잘 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부족한 게 많다. 관람객들에게 근사한 박물관을 선사하고 싶었지만, 현실은 여름이면 비가 새는 198㎡(60평)짜리 지하 공간이다.
지금 김 관장의 목표는 서울 인사동에 남부럽지 않은 ‘미술정보센터’를 건립하는 것이다. 개관 전시 ‘미술 정기간행물 1921~2008’전이 열리고 있는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에서 지난 13일 그를 만났다. 그는 “평생 모은 자료들, 제가 (죽을 때) 가지고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사회에 남기고 가면 좋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미술 자료를 보관·전시하는 박물관은 이번이 국내에서 처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간략히 설명하신다면.
“저희가 보유하고 있는 미술 관련 서적과 도록 등 6000여권을 홈페이지 ‘달진닷컴’(www.daljin.com)에서 검색할 수 있습니다. 일반인들은 월·수·금 오후 2~6시에 예약하면 박물관 서가를 무료 열람할 수 있어요. 복사도 할 수 있고. 국립현대미술관도 대량의 미술 자료를 제공하고 있지만 저는 가장 중요한 건 접근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에 아무리 좋은 게 많더라도 과천에 있으니 선뜻 찾아가기가 쉽지 않죠.”
-국립현대미술관은 보유하고 있는 자료 양이 얼마나 됩니까.
“양으로 따진다는 게 좀 그렇지만 여기보다는 많아요. 여기 있는 자료는 4.5t 트럭으로 3대 분량이고 충북 옥천에 계신 형님 집 광에 4.5t이 더 있어요. 지금도 자리가 비좁아서 그 자료를 가져 올 수 없다는 게 안타깝죠. 게다가 박물관이 지하라서 공기가 좋지 않아요. 책은 습기에 약하잖아요. 여름에 비가 오면 물이 새서 걱정이 많았죠.”
-자랑할 만한 자료를 소개하신다면.
“우리나라 작가 280명의 기사 스크랩을 가지고 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과 자꾸 비교하면 안 되겠지만, 거기엔 작가 한명 한명의 기사 파일은 없어요. 예를 들어 저희는 김환기의 신문기사, 작품도판, 이미지가 다 있습니다. 김환기에 관한 자료를 찾는 수고를 덜어주고 시간을 절약해주는 거죠. 이런 자료 파일은 돈으로도 못 만드는 거예요. 삼십 몇 년이라는 세월이 투자된 거니까. 화장품 회사가 발간하는 소식지나 농사짓는 사람들이 보는 잡지에 실리는 도판까지 다 모았어요. 제가 생각해도 미쳤던 것 같아요. 만날 청계천에 가서 과월호나 뒤적거렸으니.(웃음)”
-‘달진닷컴’에도 새로운 미술계 소식이 매일 올라옵니다. 직접 관리하는 겁니까.
“저도 올리고 직원들도 같이 합니다. 직원이 저까지 9명이에요. 현재 저희가 구독하는 신문이 조간 13종과 석간 2종, 모두 15종입니다. 지역신문에 보도된 미술계 소식은 인터넷으로 확인해서 주요 뉴스를 업데이트하지요. 달진닷컴에서는 미술작가들에 관한 정보, 약력, 주소도 찾아볼 수 있어요.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품 작가의 정보를 제공하지만 주소까지 제공하는 곳은 거의 없지요.”
-신문을 챙겨보고 홈페이지를 업데이트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텐데요.
“저도 피곤해요.(웃음) 중학교를 기점으로 계산하면 미술 자료수집을 시작한 지 40년이 됐고, 고등학교 3학년을 기점으로 잡으면 36년을 했으니까. 그래서 요샌 제 인생이 반쪽 인생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바둑이나 당구, 탁구, 골프 같은 운동은 아무 것도 못하잖아요. 눈 뜨면 집에서나 사무실에서나 오직 미술 자료와 씨름하니까 완전히 반쪽 인생이죠.”
-자료 수집 전문가이지만, 글을 기고하거나 연구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미술계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1985년 미술계간지 ‘선미술’ 겨울호에 ‘관람객은 속고 있다 - 정확한 기록과 자료보존을 위한 제언’이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게 시작입니다. 전시 팸플릿과 작가 연보, 연표에 잘못 기재된 것을 찾아내서 지적한 거죠. 요즘도 공모전의 부작용에 대해 가끔 얘기가 나오지만 89년부터 제가 이미 공모전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글을 썼고. 지금까지 쓴 글이 한 200여편 됩니다.”
-쓴소리를 하다보면 곤란한 일도 있을 것 같습니다.
“1981~96년 국립현대미술관 자료실에 근무할 때 그곳의 자료 보관 실태에 대해 비판하는 글을 썼어요. 시말서 쓰고 쫓겨날 뻔 했죠. 다행히 그 글이 외부 잡지가 아니라 국립현대가 만드는 뉴스레터에 실린 것이라서 진짜 쫓겨나지는 않았어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구 한국문화예술진흥원)에서 펴내는 ‘문예연감’의 오류를 지적했을 때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1년에 전시회가 몇천 건 열리는데 문예연감이 88년, 89년의 전시회 수가 똑같다는 통계를 냈더군요. 이게 말이 됩니까. 이런 것을 몇 가지 지적을 했더니 당시 문예진흥원이 뒤집어졌죠. ‘김달진이라는 놈, 국립미술관에 근무하면서 이런 식으로 한다’고. 그래서 어떤 분은 저한테 ‘편집광적’이라는 말도 하는데 사실 이건 저의 직업의식이에요. 잘못된 게 눈에 보이면 잘못됐다고 얘기해야죠.”
-80년대부터 글을 써왔는데 지금의 미술계는 많이 개선됐습니까.
“달라진 게 없습니다. 그때 국립현대 직원 100명 중에 자료정리 사서 직제가 2명이었는데 지금도 2명이니까. 그나마 국립현대만 2명이고 다른 국·공립 미술관에 가보면 1명이에요.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전담 직원이 없고 자원봉사자에게 의존하는 곳도 있어요. 국립현대의 1년 자료구입 예산이 전체 예산의 1%가 안 되는데 더 이상 얘기할 게 없죠.”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글을 쓰는 과정에서 얻은 것도 있지 않을까요.
“글을 쓰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미술 잡지를 모으다보니 이렇게 개관 전시도 하게 된 거죠. 사실 미술품 전시도 이런 자료들에서 출발해요. 큐레이터가 전시를 기획하려고 할 때 같은 주제의 전시가 과거에 있었는지 조사하고, 출품하는 작가들에 대한 조사를 해야 하잖아요. 그럼 그게 어디서 나옵니까. 자료에서 나와야지요. 그런데도 2차 자료를 가공, 생산하거나 1차 자료를 발품 팔아서 모으는 데가 없어요. 이용만 하려고 하고. 그렇다면 결국엔 누군가 자료를 만들어주는 사람도 있어야죠.”
-정부가 자료를 구입하겠다고 나서거나 지원금을 준 적은 없습니까.
“없어요. 지원이라는 것을 받아봤다면 문화예술위원회가 ‘달진닷컴‘의 콘텐츠를 보강하라는 취지로 1년에 300만~500만원씩 4년간 준 게 있어요. 올해는 그마저도 끝났죠. 정부가 대규모 비엔날레나 작가 개인전은 지원하는데 기초 자료에 대해서는 거의 안 해요. 국가 차원에서 봤을 때 미술이라는 것은 너무나 작은 한 분야겠지요. 제가 접촉해보면 그런 느낌을 좀 받아요. 미술계 사람들이야 미술을 최고로 여기겠지만. 그런데 사실은 이런 것 하나하나가 우리 문화 자산이고 사료잖아요.”
-정부 지원도 별로 없고 박물관은 무료로 운영하는데 수익은 어디에서 납니까.
“월간 ‘서울아트가이드’라고 2002년 창간해서 지금 83호까지 나온 전시 소식지가 있습니다. 한 달에 3만부를 찍는데 갤러리나 작가 개인이 이 소식지에 광고비를 내지요. 이것으로 제작도 하고 인건비, 운영비를 다 충당합니다.”
-지금 계획하고 있는 일이 있다면.
“서울 인사동에 ‘미술정보센터’를 건립하는 게 꿈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자료는 접근성이 중요해요. 국립현대 자료실은 과천에 있으니까 서울에 종합적인 미술정보센터를 설립해야 한다는 게 제 주장입니다. 95년 ‘미술의 해’에 미술정보센터 설립연구에 대한 보고서가 나왔어요. 그런데 보고서 하나로 끝났고. 2007년에도 ‘국립미술아카이브(가칭) 설립을 위한 예술자료의 체계적 관리 활용방안 연구’가 있었지만 역시 더 이상 얘기가 없죠. 만약 95년이나 2007년에 실제로 정보자료센터를 만들었다면 지금은 그 시간만큼 더 많이 발전했을 것 아닙니까. 만약 정부 차원에서 못한다면 잘 할 수 있는 곳에 지원을 해주면 되지요.”
-정부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문화체육관광부에 한번 가봤고 서울시는 서울문화재단과 한번 접촉해봤어요. ‘좋다’고는 얘기하는데 ‘될 수 있다’는 얘기는 안 하더군요. 저희가 1차 자료를 어느 정도 갖고 있으니까 국가든 독지가든 기업이든 공간을 지원해주고 자료를 데이터베이스화 해준다면 모든 국민들이 미술 자료를 손쉽게 이용할 수 있어요. 그러면 저도 평생 동안 모은 자료를 사회에 환원할 수 있으니 좋은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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