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통의동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에서는 이 박물관이 아니면 한데서 보기 어려운 귀한 자료들이 '미술인의 운문과 산문'이라는 제목 아래 전시되고 있다. 조선시대까지 시서화(詩書畵)가 하나였고, 뛰어난 화가의 문자 다루는 솜씨나 위대한 문인의 그림 다루는 솜씨가 매일반이었음에 착안해 조선말∼근·현대기의 미술가들이 쓴 시집과 수필집 80여권으로 꾸며졌다.
월북화가 김용준의 '근원수필' 초판본(1948·을유문화사)을 비롯해 구본웅의 시화첩 '허둔기'(1974·세음사), 김기창의 화문집 '침묵과 함께 예술과 함께'(1978·경미문화사), 장욱진의 수필집 '강가의 아틀리에'(1975·민음사)등이 가지런히 진열돼 있다. 미술애호가라면 절로 흥미가 솟구칠 이 자료들은 모두 '걸어 다니는 미술사전'이라 불리는 김달진 관장이 오랜 시간 공들여 수집한 것으로 8월31일까지 전시된다.
그런데 지난주 기자가 관람차 방문했을 때 이 박물관 한쪽에서는 우울한 광경이 함께 포착됐다. 천장에서 물이 새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던 것. 박물관은 노후한 건물의 지하 1층에 위치해 있고 1층에는 식당이 자리 잡고 있는데, 비가 오면 식당 주변 어딘가에 물이 고여 있다 박물관 천장으로 떨어져내린다고 한다. 오세창의 '근역서화징'(1928)을 비롯해 숱한 희귀 서적과 도록, 정기간행물 등 2만점이 넘는 근대미술 자료가 보존돼 있는 박물관에 빗물이 샌다니! 국립현대미술관에 비견될만한 자료의 보고(寶庫)이며 사립박물관 중 '미술자료'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유일한 박물관이 이렇게 열악한 상황에서 운영되고 있다는 건 우리 미술계의 자료 수집 및 관리 실태의 한 단면을 여실히 드러낸다.
미술사 연구의 기본이 되는 사료 정리와 분석을 언제까지 개인의 희생에만 의존해야 할 것인가. 김 관장은 힘없는 목소리로 "정부나 서울시가 우리 박물관을 특별히 지원해줄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 선진국처럼 가칭 '한국미술정보센터'가 설립돼 우리 박물관이 그 한 축을 맡아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만 있으면 좋겠다"고 오랜 숙원을 또다시 되뇌었다.
국민일보 = 김호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