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이름 딴 미술관 건립 붐>

"건립 후 운영부실 없도록 신중해야" 지적도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최근 작고 화가나 원로화가들의 이름을 따거나 기념하기 위한 미술관 건립 붐이 일고 있다.

업적을 남긴 작가를 기념하고 작품을 소개하기 위한 미술관 건립은 바람직하지만 최근 지방자치단체와 연계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설립 과정을 둘러싸고 잡음이 이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또 의욕에 차 떠들썩하게 개관한 뒤 제대로 미술관의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미술관도 있어 미술관 설립에 앞서 충분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충남 예산군의 수덕사 인근에는 고암 이응로의 작품을 전시하는 '수덕사 선 미술관'이 26일 문을 연다. 이 화백이 생전 작품활동을 했던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 수덕여관 옆 부지에 지어진 미술관에는 이 화백의 호를 딴 '고암 전시실'이 마련돼 이 화백의 후손과 제자, 지인들이 기증한 작품과 수덕여관을 개축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습작 등이 전시된다.

경기 양주의 장흥조각아카데미에는 조각가 문신의 이름을 딴 '양주시립문신아뜰리에 미술관'이 들어선다. 이 미술관은 세계적인 건축가 겸 디자이너 론 아라드의 설계로 가을께 완공될 예정이다.

원로화가 산정 서세옥의 호를 딴 '산정미술관'은 경기 고양에서 추진되고 있으며 이밖에 시립미술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경기 남양주시도 장욱진의 유족 측에 이 미술관을 장욱진과 관련한 공간으로 만드는 방안을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작가 이름을 딴 미술관 건립이 순조로운 것만은 아니다.

인천시는 일랑 이종상 화백으로부터 1천500여점을 기증받아 '시립일랑미술관' 건립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지역문화예술단체는 '지역과 아무 연고가 없는 개인작가의 미술관을 시민의 세금으로 세울 수 없다'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또 오는 5월 경기 양주의 장흥문화예술특구에 들어설 예정이었던 천경자 미술관은 미술관 건립 과정에서 천경자 화백 측과 양주시의 이해관계가 엇갈려 결국 건립이 무산됐다.

미술관이 무사히 지어진다고 해도 그 뒤 운영도 문제다. 2000년대초 생존작가의 이름을 따 지어진 미술관 한 곳은 개관 이후 몇차례 전시를 한 이후 별다른 전시 없이 수년째 '개점 휴업' 상태고 역시 비슷한 시기 작고작가의 이름을 따 세워진 다른 미술관은 정작 해당 작가의 작품은 거의 없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비교적 모범 사례로 꼽히던 환기미술관도 최근 김환기의 유족인 환기재단 이사장이 미술관장에 대해 '미술관 소장품을 마음대로 내다 팔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 문제가 법정 소송으로까지 비화하는 등 홍역을 앓고 있다.

김달진 김달진미술연구소장은 최근 이러한 미술관 건립 붐에 대해 "최근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자체장과 작가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미술관 건립을 추진하는 것도 영향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작가를 기념하는 미술관을 만드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미술관이 입장료나 카페 등의 시설에서 얻어지는 수입 외에는 수입이 거의 없기 때문에 처음에는 의욕을 가지고 출범하지만 지속적으로 끌고 나가기 어렵고 결국 유족에게 짐이 되는 경우가 많다"라며 "미술관 건립에는 그런 양면성이 있다는 것을 고려한 뒤 설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zitrone@yna.co.kr

2010. 3.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