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업을 이끄는 사람들]김달진 미술자료박물관 관장
관리자
“중고등학교 다닐때 신문쪼가리를 모아서 밥이나 먹고 살겠냐며 어른들이 걱정했는데 결국 그일로 제가 밥먹고 사는일이 됐습니다.”
아직도 아침이면 매일 15개 신문 미술기사를 스크랩하는 그는 이제 미술자료·미술 광고시장을 움직이는 일인자다.
김달진 미술자료박물관 김달진관장(55). 김관장이라는 직함보다 ‘걸어다니는 미술 사전’으로 유명한 그는 작가·평론가들 프로필은 물론 미술의 미자, 옆구리만 찔러도 정보가 쏟아지는 ‘미술 자료 박사’다.
최근 그는 숙원사업을 풀었다. 미술인 4909명을 담은 ‘대한민국 미술인명록Ⅰ’을 발간한 것. 이 책은 1850년 이후 우리나라 근현대 미술인들의 정보를 집대성한 미술자료집이다. 책 발간후 “가보로 남기겠다는 미술인 가족들의 편지와 이 책을 받아보고 싶다는 교도소 제소자의 연락까지 받았다”는 그는 “미완의 완성인 이 책은 앞으로 2권,3권,미술인명록을 만들겠다는 나와 약속”이라며 벌써부터 들떠 있다.
정보가 돈이 된 세상. 80년대 미술자료 수집광에서 국내 1호 미술자료전문가가 된 그는 2000년대 온라인 ‘달진 닷컴’으로 진화했다. 하루 이용자만 2천여명. 미술뉴스부터 화랑·미술관 전시·미술계 동정까지 미술관련 모든 정보가 모여있어 ‘미술 정보의 보고’로 통한다. 그가 또 발품팔아 만든 월간 서울아트가이드는 발행부수 3만여권이 모자랄 정도다. 2001년 1월 8쪽짜리 접지형 잡지로 시작해 2010년 180쪽 분량의 월간지로 거듭난 이 책은 무가지지만 작가와 대중, 화랑과 관객을 연결하는 ‘휴대용 매체’로 인기다. 460여개 미술관 갤러리의 정확한 전시정보 제공과 전시장 무료 배포로 전시 광고효과 0순위로 꼽힌다.
온-오프라인의 미술정보를 체계적으로 구축한 김 관장은 미술계에 널리 산재되어 있던 정보를 한데 모아 대중과 소통하는 창구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동안 미술전문지가 고급매체로 ‘그들만의 리그’였다면 서울아트가이드는 가볍지만 단단한 정보로 미술과 놀자를 표방한다.
미술자료수집 계기는 단순했다. “고등학교때 관람한 우리나라 근대미술 60년을 되돌아보는 전시에서 잘알고 있는 박수근 이중섭 변관식등 유명작가 자료는 있는데 다른 화가들의 자료는 찾기가 어렵더군요. 그때부터 각종잡지에 소개된 미술관련 자료들을 보이는대로 모았죠”
덕분에 미술전공자도 아닌 고졸 출신으로 유일하게 1981년 국립현대미술관 자료실에 입사했다. “평생 근무하겠다”고 다짐했던 국립현대미술관은 기쁨이자 아픔이었다. 임시직으로 들어가 일당 4500원을 받았어도 후회없이 일했지만 미술관련 학과를 졸업해야 큐레이터시험을 볼수 있는 법적제약 때문에 승진은 커녕 월급도 오르지 않았다. 당시 둘째 아이가 아파 월 45만원의 약값이 더 필요했다. 미술 자료 전문가로 인정받았지만 미술관의 개선되지 않는 대우에 좌절감은 커졌다. 15년간 일한 국립현대미술관을 나오면서 펑펑 울었다. “그 곳 자료들은 모두 내 손때가 묻어있다”며 아쉬움을 보이는 그는 “그래도 세상에 죽으란 법은 없다면서 이후 가나아트센터 자료 실장으로 일할수 있었다”며 쾌활하게 웃었다.
미술자료수집으로 한길을 판 지 27년. 직장생활을 청산한 그는 2001년 자신의 이름을 단 ‘김달진 미술연구소’를 설립했고 정보화시대에 맞춰 달진닷컴, 달진북컴등 사업을 확장했다. 2005년부터는 비엔날레, 아트페어 미술관등을 순회하는 아트투어 프로그램을 운영 미술 테마여행의 첫 포문을 열었다. 350만원 상당의 아트투어 상품이었지만 매진, 대박을 기록했다.
사업수익은 자료보존 공간확보에 쏟았다. 자료수집은 더 늘었다. 애지중지 자료 무게때문에 바닥이 내려앉은적도 있다. 김달진 미술연구소는 2008년 김달진 미술자료 박물관으로 개관했다.
“팸플릿같은 경우는 워낙 많아서 숫자 파악이 안됩니다. 전시도록 미술관표등 자료를 다 합치면 18톤 분량 정도 됩니다.고향인 옥천집에도 4.5톤정도 분량의 자료가 더 있어요.”
서점이나 인터넷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희귀자료와 미술단행본만 1만여권.정기간행물 331종6400여권, 미술학회지 54종850여종에 달한다. 관람료 무료. 월요일∼토요일까지 문을 여는 박물관은 사람이 돌아다니기 힘들 정도로 미술관련자료가 빽빽히 들어차 있다.
“미술 자료수집은 평생 할 일”이라는 그는 “좀더 넓은 공간으로 옮겨 날로 늘어나는 자료와 모아진 자료들이 모두 제 자리를 찾아 많은 사람들과 정보를 공유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36년간 모아온 미술자료들을 체계적으로 수집 관리하는 것은 그의 숙명과도 같은 소망이다. 현재 그의 의지에 박수를 보내던 미술계 주요 인사와 지인들을 중심으로 박물관 지원 후원회가 결성되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미술가들에게 남는건 사진과 자료와 책자들입니다. 이런 자료들이 잘 모아지지 않는다면 한국미술사를 어떻게 쓸 수 있겠습니까. 왜 자료를 모으냐고요?. 오늘의 정확한 기록이 내일 정확한 역사로 남는다는 말을 저는 명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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