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작은 박물관](29)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김달진 관장
관리자
ㆍ한국미술사 빈구석 채운 ‘40년 수집 열정’
김달진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관장(55)을 미술세계로 끌어들인 것은 잡지에 난 한 쪽짜리 원색 화보였다. 중학생 때인 1960년대 말, 그는 잡지에 실린 ‘이달의 화랑’이나 ‘이 주의 전시’ 같은 원색 원화에 빠져들었다. 그는 여기저기 묵혀 있던 잡지와 신문을 찾아내 화가들의 그림을 오려 모았다. 그림뿐 아니라 화가와 관련된 기사까지 챙겨 스크랩북에 차곡차곡 모아놨다. 그는 화보를 모으다 보니 어느 새 서양미술이 자신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었다고 했다. 지금은 지천에 널렸지만 잡지와 신문을 쉽게 볼 수 없던 시절이었다.
그의 미술자료 수집욕은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한 뒤 되살아났다. 그는 학교에서 가까운 청계천 7·8가의 헌책방을 드나들었다. 그곳에는 원색 그림이 실린 주간경향 등 주간지, 여원·주부생활 등 여성지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문제는 늘 비어 있는 호주머니였다. 그는 “책 살 돈이 모자라 책방 주인에게 사정사정해 그림 있는 부분만 뜯어 10원, 20원을 주고 샀다”고 했다.
김 관장이 체계적으로 미술자료를 모으기 시작한 건 1972년 열린 ‘한국근대미술60년전’을 보고 나서다. 근대미술 60년을 총정리하는 전시회라고는 하지만 화가와 그림을 뒷받침해 줄 자료들이 변변치 않았다. 심지어 작가의 약력이 생략된 채 도록에 실린 작품도 많았다. 그는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 같은 유명 화가를 제외하면 대부분 그런 식이었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별의 밝기로 치면 1등별인 유명 화가들도 2등별, 3등별 화가가 없인 1등별이 될 수 없는 거였다. 더구나 2등별, 3등별이 없는 한국미술의 역사는 반쪽의 역사였다. 그는 “버려지는 미술자료를 모아 한국미술사의 빈구석을 채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이경성 초대 관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와서 일해보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그동안 모은 미술자료를 짊어지고 이경성 홍익대 교수를 찾아뵌 적이 있었다. 이 교수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미술자료를 꼼꼼하게 모아 온 젊은이를 눈여겨보았고, 초대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이 되면서 그에게 자료실 일을 맡겼다. 김 관장은 96년까지 15년 동안 국립현대미술관 자료실에서 ‘원없이’ 미술자료 속에 파묻혀 살았다.
국립현대미술관을 나온 그는 가나아트센터를 거쳐 2001년 자신의 이름을 내세워 미술연구소를 차렸다. 김 관장은 40대 중반, 만학으로 학·석사 과정을 마쳤다. 김 관장이 36년 동안 모은 미술자료는 단행본·작가화집 1만8000여권을 비롯해 4만점에 이른다. 그 가운데 그가 중학교 때부터 스크랩해온 15종의 신문기사 모음이 눈에 띈다. 2008년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을 열자 자료 기증과 무명(?)화가 유족들의 제보도 잇따랐다. 그는 그것들을 모아 한국근대미술사의 빈칸을 채워나갈 수 있었다.
김 관장의 꿈은 미술의 중심지인 서울 인사동에 ‘미술정보센터’를 여는 것이다. 버려지고 있는 한국의 현대미술 정보를 제공하고, 전국적으로 열리는 전시회를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해주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박물관 운영과 미술전시 정보 가이드북인 ‘서울 아트 가이드’ 출간하는데도 힘이 부치는 그에게 미술정보센터는 그야말로 꿈이다. 김 관장은 “정부에서 나선다면 그동안 모은 모든 자료를 제공할 의향이 있다”고 했다.
◇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가는 길
박물관 소장품은 단행본·작가화집 1만8000여권을 비롯해 정기간행물, 팸플릿, 학회지 등 4만여점이 있다. 1층 전시실에선 새로 수집한 미술자료와 주제별 전시가 열린다. 2층은 자료실로 각종 화첩과 단행본 서가를 갖추고 있다. 자료실은 월·수·금요일 이용할 수 있으며 사전 예약해야 한다. 김달진 관장이 최근에 구한 희귀본 「서화협회회보」(1921, 22년)가 전시된다. 제2호로 종간된 우리나라 최초 민간 미술단체 ‘서화협회’가 발간한 우리나라 첫 미술분야 정기간행물로 현재 2권만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겸재 정선의 그림이 실려 독일에서 출간된 「한국 금강산에서」(1927년), 한국미술을 영어로 소개한 「History of Korean Art」(1929년)도 전시하고 있다.
서울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내려 경복궁 돌담을 끼고 500m 채 못 가서 박물관이 있다. 11월 중에 홍익대 앞 산울림극장 옆으로 옮겨갈 예정이다. 서울 종로구 창성동 35 (02)730-6216 www.daljinmuseu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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