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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전시관' 된 '사설' 간송미술관의 숙제는…

관리자

최완수 연구실장의 비유대로였다. 한국 미술사의 ‘성지’인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은 올가을 국민 관객들의 물결에 휩싸여있다. 지난 16일 개막한 가을 기획전 ‘풍속인물’을 보러온 이들은 풋내기 관객들이 아니다. 간송은 한국 전통 미술의 필수적인 순례처이자, 국민 전시장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개막 1주일여가 지난 지금 미술관에는 평일 4000여명, 주말에는 1만명 이상이 찾는다. 평일에도 아침 9시 이전부터 정문 밖 큰 길까지 남녀노소 관객들의 줄이 이어진다. 좁은 길에서 최소 1시간 이상, 주말에는 최대 3시간 이상을 떨며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도 관객들에게서 다급하거나 불만어린 기색을 찾기 어렵다. 서울 기온이 급격히 떨어진 지난 25일 오전에도 정문 들머리에서 200여미터나 떨어진 성북동 파출소 앞까지 줄이 늘어섰다. 경기도 남양주 덕소에서 왔다는 주부 이순의(66)씨는 “전통 그림 속에 깃든 조상들의 삶과 생각들을 실물로 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고 털어놨다. 대학생 신양수(21)씨는 “티브이나 책에서만 봤던 명품 그림들을 무료로 봐서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전통 시각문화에 대한 갈망과 호기심을 내비치는 표정으로 그들은 줄서 있다가 미술관 안으로 몸을 사리며 들어갔다.

 미술관 1, 2층에서는 혜원 신윤복의 저 유명한 풍속화 모음인 전신첩 작품 16점을 비롯해 단원 김홍도, 겸재 정선, 관아재 조영석 등 뛰어난 조선 화가들의 명작 100여점이 맞는다. 1층에 있는 혜원의 <미인도>, 2층에 있는 네 개의 혜원 전신첩 진열장에는 20~30명의 관객들이 새카맣게 달라붙어 창 아래 펼쳐진 혜원의 풍속 진경을 뚫어지게 지켜보았다. ‘단오풍정’ ‘연소답청’ 등 이름난 화폭 장면들마다 그림에 얽힌 이야기를 복기하며 대화가 이어진다. 미술관의 한 연구자는 “인터넷에서 관람 정보를 숙지하고 온 이들이 대부분이다. 1년여전만 해도 문의전화가 불이 났지만, 올해엔 크게 줄었다”고 전했다. 인터넷 블로그에는 도록을 반드시 살 것, 2시간 이상 기다림을 각오할 것 등의 내용을 담은 관람 매뉴얼도 떠돌아 다닌다.

요사이 간송미술관이 관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풍경은 지난 2004년 봄 겸재 정선의 명품들을 소개한 대겸재 전 이래 숱하게 언론에 오르내린 바 있다. 특히 2008년 10월 열린 설립 70주년 기념전은 북새통 자체였다. 때마침 혜원 신윤복을 소재로 한 드라마 <바람의 화원>이나 영화 <미인도> 등이 나오면서 일어난 혜원 열풍으로, 사상 최대인 10만여 관객들이 몰려들면서 부실한 전시환경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그러나 올해 전시는 양상이 다르다. 관객들은 여전히 몰려들지만, 2~3년전 같은 대혼잡이나 현장에서 전시 서비스의 열악함을 질타하는 목소리들은 찾기 힘들다. 좁은 전시장에서 알아서 관람의 법도를 지키고, 스스로 전시 동선을 만들어가는, 경건해보이기까지 하는 관람객들의 자세가 이를 반증한다. 미술계쪽에서는 18세기 조선 문화중흥기 실체를 연구로 밝혀주고, 무료 전시로 공개해온 최 실장과 간송학파의 노력이 국민 의식 저변에 본격적인 반향을 일으키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술평론가 김달진씨는 “엄청난 인파에도 관객들이 스스로 기품을 지키며 관람하는 모습은 전에 볼 수 없던 것이어서 많이 놀랐다”고 했다.

내년 간송 전형필의 서거 50주년을 앞둔 지금, 간송미술관의 봄·가을 기획전은 국가박물관보다 더 큰 권위를 지닌 공공 전시의 대명사로 격상됐다. 하지만, 간송의 미래를 기약하기엔 현실이 간단치않다. 사실 간송의 명품들은 법적인 지위가 모호하다. 간송컬렉션이 공식적으로 미술관 등록을 하지 않은 탓이다. 실제로 소장품들은 일제 강점기 최고의 문화유산들을 전재산을 들여 수집한 간송 전형필(1906~1962)의 차남 전성우(77)씨와 삼남 전영우(71)씨 등 2남3녀 후손들의 개인 소유다. 소장품 유지·관리·전시는 1966년 이래 방치된 간송의 보화들을 연구·정리하며 71년부터 기획전을 열어온 최 연구실장과 ‘간송학파’로 불리는 후학 연구자들이 전담해왔다. 생전 대감식가 위창 오세창으로부터 수집 자문을 받았던 간송에 이어 간송의 2세대들도 보기 드문 컬렉터-멘토 연구자들의 동등한 양대 운영체제로 미술관을 이끌어온 것이다. 그러나 최근 연로한 간송가 소유자들이 자식들에게 컬렉션을 승계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되면서, 간송가와 미술관 연구실의 간송학파 학자들 사이에 미묘한 냉기류가 감도는 낌새다. 수장고 유물을 실견하는 것도 연구자들의 관여를 거쳐야 하는 기존 시스템에 소유자인 간송가쪽에서 불만을 내비쳤다는 말들도 나돈다.

문화계에서는 수년전부터 컬렉션의 공공성에 걸맞게 간송의 명품들을 안전하게 보존할 새 전시관 신축의 필요성을 거론해왔다. 70여년 묵은 현 미술관의 전시·보존 환경이 일제 강점기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현실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미술관 자체를 국가문화사적으로 격상시켜 조건없이 국가 예산을 지원해야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그러나 앞서 재단설립 등을 통해 현재의 사설미술관을 등록시키고 유물들의 법적 지위를 확보해야하는 과제를 풀어야한다. 미술관쪽의 한 관계자는 “연구실과 유족들이 서로의 영역에 간섭하지 않는 현 운영체제는 앞으로 계속 존속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유족들이 소유 운영의 문제를 명쾌하게 가닥을 짓고, 국가 차원에서 전시관 지원에 대한 구체적 방침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일본의 고도 나라의 국립박물관에서는 매년 10월 고대 왕실 보물 창고인 쇼소인의 비장품들을 선보이는 전시가 열린다. 1946년 이래 계속된 쇼소인 전은 전국에서 수십만의 인파가 몰리며 기념 열차까지 달리는 범국민적인 전시 이벤트다. 쇼소인 전처럼 이제 한국판 국민 전시로 자리잡은 간송미술관 전시는 위상에 걸맞는 미래의 청사진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원복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실장은 “간송의 기획전은 더이상 간송가 전유물이 아닌 국민적 관심사다. 바로 이 지점에서 간송의 미래에 대한 사회적 고민이 시작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music/50281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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