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 하나 열어볼까?…화랑 오픈의 모든 것
관리자
서울 인사동의 한 부동산 중개소. 기존에 화랑으로 운영하던 공간이 매물로 나왔다. 거래 조건은 12평 공간에 보증금 8500만 원, 권리금 1500만 원이었다. 월세는 185만 원. 보증금에 권리금까지 포함하면 1억 원이 필요하다.
흔히 화랑가에서 “새 화랑을 차리려면 일단 공간을 구하는 데 1억 원이 필요하고, 여기에 새 인테리어를 하고 개관 전시 준비까지 하려면 2억 원 정도가 든다”고 하더니 딱 그대로다.
이 부동산 관계자는 “요즘 인사동에 해외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일반 소매상점들이 많아져 화랑 할 만한 공간을 찾기가 쉽지 않다”며 “구한다 해도 인사동 메인 거리는 너무 비싸고 각종 음식점이나 상점들이 차지하고 있어 화랑은 외곽으로 밀려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지속되는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화랑 숫자는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지방의 전시-판매 공간이 늘어나 서울보다 더 많은 상태다. “나도 화랑 한번 해볼까”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꾸준하다는 의미다. 비용은 얼마나 드는지, 어떤 실력을 갖춰야 하는지, ‘화랑 오픈의 실제’를 점검해 봤다.
화랑은 어떤 곳이며 어떤 일을 하는지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문턱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화랑이란 어떤 곳이고 화랑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어떤 점들이 필요할까.
현재 인사동에는 화랑 매물이 거의 없었다. 화랑을 열 만한 공간 역시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인사동 외곽에서 10평 정도의 공간을 얻으려면 기본 보증금(권리금 포함)으로 1억이 필요했다. 월세는 200만 원 정도였다.
그림을 감상하고 판매하는 곳이라면 당연히 화랑(갤러리)을 떠올리게 된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미술에 대한 인식이 점차 대중화되고 미술품의 경제적 가치가 조금씩 인정되면서 화랑을 여는 데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화랑의 의미와 그 시작은?
화랑은 한 마디로 회화, 조각, 판화 등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곳이다. 일차적으로는 작가에게 전시 장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으며, 수요자에게 작품을 판매하는 기능을 넘어 미술 작품을 감상하고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이다.
유럽에서 화랑은 알렉산드로스 대왕 시대에 수집 미술품을 저택의 회랑(gallery)에 진열한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르네상스 시대 이후에는 귀족의 저택에 이 같은 갤러리 시설을 갖춘 곳이 많았다. 대중의 미술 감상을 위한 장소로서 공개적인 갤러리가 생긴 것은 19세기 이후의 일이다. 화상(art dealer)이 경영하는 오늘날의 갤러리는 화단의 중심적 존재가 됐다. 화상은 미술작품을 수집하고 분배하는 사람으로, 화상은 화랑의 기능을 함께 한다고 볼 수 있다.
한국에서는 1900년 정두환이 서울에 세운 ‘서화포’가 근대적 화랑의 시초다. 하지만 본격적인 미술 시장은 1956년 한국 주재 외국인 부인들(미국인 여성 실리아 중심)이 만든 반도화랑이 선두였다. 1970년대에 본격적인 현대적 화랑인 현대화랑과 명동화랑 등이 개관했으며 그 이후 1980년대와 1990년대를 거쳐 수많은 화랑들이 문을 열었다. 특히 2000년대에 접어들어서는 빠르게 국제 미술시장이 개방되면서 국내에도 점차 선진화된 화랑 운영 시스템이 형성됐고, 국내뿐 아니라 국제 시장을 겨냥한 화랑도 많아졌다.
화랑과 미술관, 무엇이 다른가?
흔히 미술관과 화랑을 헷갈려 하지만 성격은 많이 다르다. 미술관은 공공의 목적이 있는 개념으로 보면 되고 화랑은 영업을 중심으로 전시가 기획되는 점이 다르다. 미술관장과 화랑 대표는 모두 미술사적인 지식과 더불어 미술 시장의 흐름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하며 작가를 성장시키는 역할을 한다. 미술관의 경우 공적자금에서 예산이 나오는 방식으로 운영되기도 하고 어느 경우에는 소장품을 매매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전시를 통한 임대수익과 입장료 등이 수입원이다.
이와는 달리 화랑은 개인적인 성격이 강하다. 영업을 중심으로 운영되기에 미술사적인 개념보다는 미술 시장의 잣대를 중심으로 운영된다는 점이 미술관과 다르다. 또한 주요 수익원은 작품 매매다. 때문에 화랑 대표가 작품을 구입할 컬렉터 인맥을 얼마나 확보하고 있느냐에 따라, 그리고 작가를 성공시킬 힘이 어느 정도이냐에 따라 화랑 운영의 성적이 달라진다.
화랑은 미술 시장에서도 다소 폐쇄적인 시장이라 볼 수 있다. 이는 화랑이 작가와 거래를 하면서 대체로 고정적인 컬렉터를 상대로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다 같은 화랑 아냐…운영 성격 달라
겉모습으로는 모두가 다 같은 화랑으로 보일 수 있지만 운영 성격에 따라 구분할 수 있다. 화랑을 크게 나누면 기획화랑, 대관화랑, 상설화랑 등이 있다. 기획화랑은 말 그대로 작가의 성향에 맞게 전시를 기획하거나 일정한 주제를 정하고 그에 어울리는 전시를 개최한다. 초대 전시의 경우는 작가가 작품을 제작하는 것 이외의 대부분의 과정과 비용을 화랑에서 부담하는 경우가 많다.
대관화랑은 전시공간을 빌려주는 임대업 성격이 강하다. 전시 기간에 정해진 경비를 지불하면 누구나 전시 공간을 사용할 수 있다. 이 경우 전시와 관련된 모든 비용은 대부분 작가가 부담한다.
상설화랑은 상설매장과도 같다. 특별히 전시를 열지 않고 작품 판매만을 위한 공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작가가 직접 작품을 위탁해 판매가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판매할 작품을 미리 화랑이 구매해 걸어 놓거나, 일반 컬렉터가 자신의 그림을 다시 팔아달라고 의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때문에 ‘중개화랑’으로 불리기도 한다. 미술 시장의 경기변화에 가장 민감한 유통단계이기도 하다.
인사동의 한 화랑 대표는 “요즘처럼 경기가 어려울 때 기획화랑이나 대관화랑은 작품 팔기가 쉽지 않으며 오히려 상설화랑에서 거래가 꾸준히 일어나고 있다”며 “유명 작가의 작품을 사러 오는 컬렉터들이 전시 화랑보다는 상설화랑을 더 많이 찾는 것이 이유 같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기획 전시를 하지만 작품 판매를 하지 않는 대안공간, 기획과 대관을 하면서 간단한 차와 음료수를 판매하는 복합적 성격의 화랑이나 갤러리카페 등이 있다. 최근 경기침체가 지속되면서 하나의 성격보다 이처럼 여러 기능을 합쳐 운영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인사동에 화랑 열려면 최소가 2억
실질적으로 화랑을 연다면 가장 기본이면서 먼저 준비해야 할 것이 자금이다. 화랑을 운영할 공간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얼마나 필요할까? 현재 화랑을 운영하고 있는 많은 화랑 대표들은 대개 “평균적으로 1년에 1억 원이 소요되는 것으로 생각하면 쉽다”고 입을 모았다.
한 화랑 대표는 “화랑을 연다면 최소 3년은 버텨야 한다. 그래야 이제 좀 자리잡아간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렇다면 계산적으로 운영비가 3억 원 나오는데 이는 순수 운영 비용만을 따져본 것일 뿐 갤러리 설립 초기 비용까지 다 생각한다면 최소 5억은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5억이라는 돈도 화랑 운영에 있어 큰돈은 아니다. 매달 임대료와 전시 비용, 인건비, 시설비 등 수많은 지출과 투자가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꾸준한 작품 판매로 수익이 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다는 얘기다.
운영비 연간 1억씩 최소 3년 버틸 수 있어야 하므로
5억원은 기본. 꼼꼼한 기획과 준비 아래 시작하고 기획력, 컬렉터, 미술지식, 마케팅능력 등 갖춰야
서울 사간동 인근 부동산 관계자는 “요즘에도 갤러리 공간에 대한 문의가 꾸준히 오지만 매물이 없다”며 “지난해 봄에 특히 갤러리 자리를 알아보려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전했다.
화랑은 장소가 중요하다. 화랑이 많이 모여 있는 인사동이나 사간동, 삼청동, 신사동, 청담동으로 발길이 몰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참신한 기획으로 좋은 전시를 열고 자신만의 컬렉터층이 있다면 위치가 다소 떨어져 있어도 찾아오는 관람객이 있겠지만 여간해서는 어렵다. 화랑은 겉만 좋아서도 안 되고 전시 공간만 잘 되어도 안 된다. 밀집된 지역의 화랑은 그냥 스쳐 지나가다가 만나는 공간이 되기 쉽다. 전시를 위한 공간과 쉼터의 역할을 함께 하면 좋다. 전시는 대중과 함께 한다는 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현대미술경영연구소 박정수 소장은 “화랑을 하는 데 있어 자금은 기본이고 가장 먼저 문화예술을 사랑해야 한다. 무엇보다 자신이 미술을 알아야 한다. 겉으로 보이는 것만 봐서는 알 수 없다. 화랑은 자금 회전율이 늦기 때문에 투자비가 많이 발생한다. 때문에 즐기고 사랑하는 마음가짐이 없다면 오래 버티지 못한다”고 조언했다.
경기 어렵다지만 갤러리는 계속 생겨
지속되는 경기 침체 속에서도 2011년 한해 새로 생긴 전시공간이 2010년보다 20% 늘어나면서 최근 10년 새 최고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달진미술연구소가 박물관, 미술관, 갤러리 등을 집계한 결과 2011년 새로 생긴 전시공간은 176곳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지난해 144곳보다 20% 증가한 수치다.
2011년 전시공간 변화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지역 전시공간의 폭발적인 증가다. 이는 지자체의 미술관 건립이 활발해짐과 동시에 2011년에는 전시관, 기념관, 문화관 등 이전과 달리 조사 범위를 확대한 것이 요인으로 작용했다.
서울과 지역의 비율은 2009년 40%, 2010년 49%로 비슷했지만 2011년에 들어 59%로 지방이 더 많아졌다. 구체적으로는 2007년 서울 74곳 지역 33곳, 2008년 서울 93곳 지역 50곳, 2009년 서울 60곳 지역 39곳, 2010년 서울 73곳 지역 71곳이었다. 2011년에는 서울 72곳, 지역 104곳으로 지방 전시 공간이 더 많아졌다.
지역별로는 서울 다음으로 경기도(33), 대구(16), 부산(11), 전남(9), 울산(6) 순이었다. 월별 전시는 4월(28곳), 5월(24곳), 11•6월(각 19곳), 3월(17곳) 순서로 많았다. 서울의 구 단위로는 강남구와 종로구가 각각 21곳(29%)을 차지해 화랑이 가장 많았다.
지방 전시공간이 늘어나는 것은 지자체마다 미술관 건립 붐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무안군 오승우미술관, 충남 홍성군의 고암 이응노생가기념관 등 그 지역 출신 유명 작가의 이름을 딴 미술관을 건립되거나, 지역의 문화콘텐츠를 특성화시킨 박물관-전시관 건립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충북 청원군에는 대통령 옛 별장인 청남대 내에 대통령역사문화관, 경북 울진군에는 국내 최대 규모의 비석 전시관인 봉평 신라비 전시관 등이 잇달아 개관했다.
김달진미술연구소는 “지역의 문화콘텐츠를 활용해 관광객을 유치하고 지역경제를 살리는 긍정적인 효과를 볼 수 있지만, 외형 꾸미기에만 급급하고 콘텐츠가 부실하면 세금만 낭비하는 꼴이 될 수 있음을 잊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한편 재정난으로 폐관하는 전시 공간도 늘었다. 12년간 운영된 부산의 대표적인 대안미술 공간인 대안공간 반디가 2011년 10월 문을 닫았다. 9월에는 한국 도예의 산실인 해강도자미술관이 부동산 매물로 나왔다. 6월에는 서울 삼청동의 비영리 전시공간 몽인아트센터가 개관 4년 만에 갑작스럽게 문을 닫았다. 이외에 그랜드인터콘티넨탈호텔 내 아소갤러리, 소격동 아카스페이스, 인사동 갤러리밥, 이태원 공간 해밀톤이 폐관했다. 또 갤러리익 청담은 갤러리익 양평과 합쳤고, 123갤러리는 살롱드에이치와 통합했다. 청담아트는 청담아트센터로 통합 흡수됐다.
자리를 옮기기도 한다. 홍대 아트스페이스휴가 파주 출판문화정보산업단지 성지문화사 건물로, 신사동 갤러리시몬이 통의동으로, 가회동 갤러리스케이프가 한남동으로, 삼청동 Fnart 스페이스가 신사동으로, 인사동 갤러리도스가 팔판동으로, 갤러리가비가 화동으로, 부산 광안동 미광화랑이 민락동으로 각각 자리를 옮겼다.
“컬렉터층 확보가 가장 중요”
미술에 대한 열정 가꾸는 갤러리 에뽀끄 김희정 대표
“갤러리를 운영하는 데 있어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 들어가요. 때문에 자금력은 기본이며 좋은 기획력과 판매력, 즉 컬렉터층을 확보하고 있어야 해요. 좋은 전시가 있어야 사람들을 불러 모을 수 있고 인적 네트워크가 좋아야 판매까지 이어갈 수 있죠.”
서울 종로구 재동 갤러리 에뽀끄에서 만난 김희정 대표는 2011년 5월 새롭게 갤러리를 오픈하고 현재 10여 개월째 운영 중이다. 주변의 많은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꿈을 이루고자 화랑을 시작했다는 그녀는 개관 당시를 돌아보며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갤러리는 초기 개관하기까지 목돈이 필요하지만 전시를 열어가며 들어가는 비용 또한 만만치 않다. 특히 초대전시를 열 경우 전시도록이나 광고, 엽서 등 전시에 필요한 제반 비용을 화랑 측에서 직접 부담해야 한다. 매번 전시마다 이렇게 꾸준히 비용이 소모되니 그림을 팔지 않고서는 버틸 수가 없다. 일반 기획 갤러리 수익의 가장 큰 부분이 그림 판매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갤러리 운영에서 비용과 함께 판매는 중요한 요소에요. 그래서 오랜 시간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컬렉터층을 확보하는 게 우선이죠. 갤러리를 여는 건 그 다음이에요. 기획도 잘하고 판매도 잘해야 좋은 화랑이라고 보죠. 자본력은 말하지 않아도 기본이고요.”
사실 김 대표는 오래 전 갤러리를 해본 유경험자였다. 당시 2년 정도 운영을 하다 접었으며 언젠가 다시 해보겠다는 마음으로 전시도 많이 보고 공부도 하면서 때를 기다렸다고 했다. 하지만 개관 뒤 좀 성급했다는 후회가 들기도 했다는 김 대표는 그 이유로 준비기간을 들었다.
“열정 하나로 시작했는데 현실의 냉혹함을 느꼈어요. 좀 더 준비를 했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죠. 판매력의 부진이나 컬렉터 층의 부재 때문이죠. 정말 필요한 부분이에요. 그렇지 않으면 너무 어려워요. 현재 그 부분을 채워가기 위해 노력 중이죠.”
결국 자금력을 기본으로 좋은 기획력과 판매력(컬렉터층 확보)까지 갖춰야 갤러리를 할 수 있는 필수 요소를 확보한 셈이다. 돈만 있으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는 오래 버틸 수 없다. 여기에 추가로 미술에 대해 잘 알고 사랑과 열정이 있어야 한다.
그림을 보면 기쁘고 설레는 게 갤러리 운영의 매력이라는 김 대표는 “작가들과의 대화도 즐겁고 판매만 잘 되면 금상첨화”라며 “전시된 작품들을 보면 너무 흐뭇하고 뿌듯한데 이 좋은 작품들을 많은 사람이 함께 감상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CNB저널 2012.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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