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카이브 실현과 과제>
– 김달진 한국아트아카이브협회장,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장 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는 《이중섭탄생 100주년 기념전》(-10.3)에 관람객이 많이 몰리고 있다. 이중섭은 우리나라 대표작가의 한 사람으로 일반인에게도 가장 많이 알려진 작가다. 오랜만에 그의 대표작인 황소 시리즈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은지화, 가족에게 쓴 그림엽서, 표지화, 삽화, 1955년 미도파화랑 개인전 방명록 3권 등, 그동안 이중섭 전시 중 가장 많은 아카이브 자료들이 모여졌다. 볼거리 외 가족을 사랑한 애절한 편지의 사연 등 읽을거리 또한 많다. 지난 8월 7일 끝난 서울시립미술관의 《천경자 1주기추모전》은 그동안 기증 작품 중 일부만을 보여주던 상설전이 아닌 서울시립미술관에 천경자가 생전 기증한 93점을 모두 다 볼 수 있는 전시였고, 별도 아카이브 섹션을 마련했다.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에서 대여한 25점 자료 외에 유족들이 처음 보여주는 가족사진, 수필집이 있었고, 신문에 연재 된 기획기사는 신문전문을 볼 수 있게 영상필름으로 보여주어 가독성을 극대화 시켰다.
아트아카이브는 “사회적으로 영구보존할 가치가 있는 예술자료 또는 그 예술자료를 관리하는 기관”을 가리킨다. 위 예시들은 최근 전시 중 편지나 방명록 등의 작품이 아닌 자료가 출품되는 수많은 예들 중 일부이다. 전시에서 이러한 자료들이 보이는 것은 그렇게 오래된 일은 아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전시장에는 완성된 작품만 보여주었다. 자료가 다루어지는 것은 학예실과 자료실 같은 외부와는 단절된 사무공간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이였다. 그러나 이제는 심미적 체험보다 미술전시에서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관람객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아트아카이브는 전시장으로 끊임없이 호출되고 있다.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에서는 《한국 추상미술의 역사전》(-10.29)을 진행 중이다. 이 전시에서는 작품보다 그 당시 도록, 팸플릿, 기사, 사진, 친필편지 등의 자료에 초점을 맞춰 지난 60년간의 한국 추상미술의 역사를 살펴보고 있다. 또 전시에 맞추어 한국 추상미술에 대한 미술평론가 20명의 설문조사, 사건과 이슈, 연표, 참고문헌 등을 수록한 342쪽 단행본을 발간했다. 이번 기획 취지는 한국 추상미술이 형성되어 온 과정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되돌아보는 것이었고, 관람객들과 이 되돌아보는 체험을 통해 사회적으로 후대에 전해주어야 할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보는 것이었다. 사실 전시된 모든 예술자료가 아트아카이브인 것은 아니다. 다만, 단순한 자료가 ‘사회적으로 영구보존할 가치가 있는’이란 가치를 얻기 위해서는 사회에 공개되고, 이 공개가 유의미한 논의로 연결될 때 비로소 가능해 보인다. 이번 박물관의 전시는 그런 의미에서 한국 추상미술의 역사를 돌아볼 때 어떤 사건이 중요한지, 그 중요성을 담보하는 실물은 사회적으로 어떤 것이 있는지를 생각해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올해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과천관에서 특별전의 하나로 《아카이브프로젝트 – 기억의 공존》을 내년 2월 12일까지 2층 제2원형전시실에서 열린다. 산 속 작은 마을이 국립미술관으로 바뀌기까지의 과정과 건물을 짓고 전시를 열어 소장품을 수집해 나가던 지난 역사를 보여주는 아카이브전시다. 1부는 국립현대미술관 신축배경과 건축 과정, 2부는 대규모 개관전, 야외 조각공원 설치, 다다익선, 3부는 역대 전시, 4부는 관람객들의 도록, 사본들을 볼 수 있는 열람공간으로 꾸며졌다. 평소에 쉽게 접할 수 없는 문서, 사진, 영상, 당시 근무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역사를 되돌아보고 있다. 이번 전시가 국립현대미술관의 지난 시간들 중 어떤 것이 제일 중요한 사건이었고, 그것이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와 가치 있는 논의들로 연결될지 기대가 된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과천 30년은 단지 한 미술관의 지난 시간들이 아닌 국립기관으로서 대표성을 지니고 한국의 지난 한 세대를 미술이란 안경으로 점검하는 것이다. 그 곳 자료실에서 덕수궁 시대부터 과천까지 15년을 근무했던 나로서는 영상인터뷰에 응했고 되돌아 볼 수있는 기록이 되었다.
아트 아카이브의 과제
아트아카이브의 실현은 앞으로도 전시를 통해 한 동안 우리에게 이루어질 것이라 생각되지만, 지금의 젊은 세대들이 사회를 주도해나갈 때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기억하기와 가치평가’가 진행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영구적인’과 ‘사회’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이전 세대와 새로운 세대 간의 계승이 있을 때만이 가능한 것이기에 어떤 형식으로든 끊임없이 발표되고 대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이러한 실현을 위한 과제는 무엇보다도 아트아카이브가 후대에 전해져야할 국가의 유산이고 공공의 기록물이라는 인식이다. 디지털시대가 되어 많은 것이 빠르게 만들어지고, 공유되지만 그 소멸되어지는 것도 빨라져서 어떤 것이 남겨야 할 것인지 판단조차 내려지지 못하고 많은 유의미한 것들이 사라지고 있다.
지금 미술계의 심각한 천경자 미인도, 이우환 위작 논란도 안목감정과 과학감정 모두 불신을 당하고 있는 상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작품이력(Provenance)과 같은 객관적 정보들을 기록하고 관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렇지만 2010년에 독립되었던 국립예술자료원 기관이 4년만에 다시 후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합병되어 부서로 축소되고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지하2층 자료실을 아카이브란 문패, 리모델링한 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에 안내판 뿐인 아카이브는 우리가 가야할 아카이브 설립의 어려움을 상징한다.
이제 아트아카이브는 국가의 유산이고 공공의 기록물이라는 차원에서 적극적인 정책의 지원이 필요하다. 우리 현대미술의 해외 진출이나 최근 화두인 ‘미술한류’도 새로운 아카이브 시스템과 정확한 정보 제공에서 출발해야 함은 분명한 사실이다. 올바른 아트아카이브 구축은 한국 현대미술이 국제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첫걸음인 동시에 우리의 오리지널리티 확보와 위작 시비를 줄일 수 있는 당면과제이다. 그러기에 아트아카이브의 활동은 단순히 자료를 보존한다는 일차적 역할에서 나아가 한 나라의 미술문화를 온전히 보전하는 것으로 문화적 정체성을 고취할 수 있는 기반이다. 여러 문제가 사회적인 치매증상으로 이어져 더 큰 문제를 초래하기 이전에 정부는 많은 지원을 뒷받침해주어야 한다. 아카이브 시스템은 그 나라의 문화수준이자 문화적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이중섭전 아카이브
천경자1주기추모전-아카이브
한국추상미술의-역사전,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30년 아카이브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