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서울 출장길에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에 들러 '한국 미술잡지의 역사전'을 관람했다. 이곳에서는 191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창간된 미술잡지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1917년 나온 '미술과 공예' 1·2호를 비롯해 북한에서 나온 '미술' 등 희귀한 옛 잡지에서부터 최근 잡지까지 다양하게 만나볼 수 있었다. 특집기사로는 국내 미술계 주요 이슈의 변화를, 게재된 광고들을 통해서는 국내 기업의 변천과 시각 디자인의 변화를 엿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잡지에는 발행처와 출판물의 성격에 따라 다양한 내용의 글이 실린다. 수십 년이 된 잡지를 한자리에 모아보면 시대의 흐름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특히 문화예술 잡지는 각 장르의 역사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료다. 잡지의 광고를 통해서는 해당 잡지를 후원한 기업이나 단체의 역사도 살펴볼 수 있다.
대구의 경우는 어떨까. 광복 이후 대구에는 '죽순'(竹筍)이라는 문학잡지가 있었다. 죽순시인구락부가 1946년 5월 창간한 '죽순'은 광복 이후 발간된 최초의 문학동인지다. 대구에서 창간됐지만, 전국의 시인들이 집필에 참여하면서 높은 위상을 자랑하기도 했다. 박목월 시인의 추천으로 청록파의 박두진, 조지훈 시인도 작품을 발표했고, 김춘수, 신동집, 이응창, 이효상 등 유명한 문인들이 참여했다. '죽순' 제8집에는 달성공원에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시비인 상화시비의 건립 과정과 사진자료가 담겨 있다. '죽순'을 통해 해방 이후 대구 문단의 굵직한 역사를 돌아볼 수 있다. '죽순' 잡지들은 대구문학관에 보관되어 있다.
또 대구가 '6·25전쟁 속에서도 음악소리가 이어지던 도시'였다는 기록은 미국 음악잡지 '에튜드' 1953년 10월호에서 찾아볼 수 있다. 6·25전쟁에 참전한 미군 병사가 쓴 기사 내용과 사진을 통해, 당시 대구 중구 향촌동에서 운영되던 클래식 음악감상실 '르네상스'의 분위기를 살펴볼 수 있다. 이 기사에는 '전쟁으로 황폐해진 한국에서 진지한 음악의 잔재라 할 만한 거의 모든 것이 여기에 남아 있다'는 표현까지 등장한다. 기사가 실린 '에튜드' 잡지는 대구음악협회가 2018년 여름, 인터넷 경매를 통해 확보해 보관 중이다.
대구에서 발행된 종합 문화예술 잡지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1981년 대구시가 직할시로 승격함과 동시에 대구예총이 출범했다. 예술 장르별 10개 지회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대구예총이 '대구예술'을 정기적으로 발행하기 시작했다. '대구예술'은 창간 초기 연간으로 발행되다가 1991년부터 월간으로 바뀌었고, 1999년 이후 폐간과 복간을 거듭하다가 2010년부터 계간지로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대구예술'을 한자리에 모아보면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대구예총과 10개 지회의 역사와 작고 예술인들의 기록들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1980년대 이전의 지역 예술사와 관련된 기록들도 상당히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1980년대 '대구예술'이 거의 유실됐다. 1990년대 '대구예술'도 거의 유실됐다가, 최근 지역의 한 미술평론가가 개인적으로 보관하던 것을 대구시와 대구예총에 공유하기로 결정하면서 부족한 호가 상당 부분 메워졌다.
1985년 12월부터 대구시가 발행해온 월간 문화예술정보 잡지 '대구문화'는 결호 없이 이어져왔고, 다행히 한 권도 빠짐없이 보관돼 있다. 2017년부터 종이 책자 외에 디지털 아카이브를 통해서도 서비스되고 있다. '대구문화'와 함께 '대구예술' 잡지가 한데 모여 디지털 아카이브로 구축·서비스되면 지역의 문화예술 연구자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될 것이다.
최근 몇몇 원로예술인들에게 수소문한 결과, 1980년대 '대구예술' 3권을 찾았다. 대구예총과 함께 빠른 시일 내에 캠페인을 벌여 '대구예술' 결호를 모을 계획이다. '대구예술'이 다 모이면, 민간에서 발행된 다른 잡지들도 수집할 계획이다. 대구가 남긴 '찬란한 예술의 기억'을 간직한 잡지들, 그렇지만 어느새 숨 가쁜 사회가 흘리고 간 유산이 되어버린 문화예술 잡지 모으기에 동참해주시길 부탁드린다.
임언미 대구문화 편집장
특집부 weekly@i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