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개막한 ‘한국의 채색화 특별전: 생의 찬미’(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이하 특별전) 전시 소책자 표지와 전시 포스터 그림은 18세기 궁중회화로 유행하다가 19세기 민화로 확산한 장르인 ‘책가도’ 중 ‘매화 책거리도’(작가 미상, 19세기)다. 원화로는 대중에게 처음 공개하는 작품이다.
‘한국의 채색화 특별전’의 대표 작품인 ‘매화 책거리도’(작자 미상, 19세기, 8폭 병풍),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특별전은 언뜻 지난 4월 개막한 국립진주박물관·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의 ‘한국 채색화의 흐름 전’(이하 흐름전)을 떠올리게 된다. 진주의 두 기관 전시엔 도화서 화원·차비대령화원 이형록(1808~?)과 차비대령화원 장한종(1768~1815)의 책가도 두 점이 나왔다. 단 장한종 작품은 ‘전(傳, 누군가의 작품으로 전해진다는 의미)’이 붙었다.
‘한국의 채색화 특별전’은 전통 채색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들을 여럿 내놓았다. 그림은 ‘책가도’ 구성 등을 차용한 문선영의 ‘컬러피아 3, 4, 5’(2021). 김종목 기자
다만, ‘매화 책거리도’도 이형록·장한종 작품과 표현 양식 등에서 차이가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미상의 작가가) 궁중 화원급으로 세련되고 세밀하게 그렸고 너비가 3m에 달하는 궁중회화의 크기이지만 표현양식은 민화풍”이라고 설명한다. 8폭에서 3폭까지 매화나무를 책과 책장에다 도자기, 문방구 위로 길게 뻗어 그린 걸 두고도 미술관은 파격으로 꼽았다.
특별전 제목과 대표 그림만 보면 조선 시대 중심의 전통 채색화 전시로 여기기 쉽다. 전시 작가나 출품작은 채색화 전통의 범주를 넘어선다.
‘한국의 채색화 특별전 - 생의 찬미’ 포스터.
미술관은 보도자료에 “조계종 종정 성파 대종사를 비롯해 강요배, 박대성, 박생광, 송규태, 신상호, 안상수, 오윤, 이종상, 한애규, 황창배 등 작가 60여 명, 80여 점을 출품했다”고 썼다. 이중 박생광(1904~1985)은 ‘일본풍’에서 ‘토속적·독창적 화풍’으로 전환을 이뤄내며 ‘한국 채색화의 대가’란 평가를 받았다. 기존 한국 채색화 전통의 맥락과 범주, 미술사에서 포함되지 않는 작가와 장르도 여럿이다. 최근 미술도 아우른다.
박생광은 ‘일본풍’에서 ‘토속적·독창적 화풍’으로 전환을 이뤄내며 ‘한국 채색화의 대가’란 평가를 받았다. 특별전 출품작은 ‘전봉준’(1985)이다. 김종목 기자
채색화가 아닌 작품도 여럿이다. 오윤(1946~1986)의 ‘무호도’(1985)는 검은색 목판화다. 한애규의 ‘기둥들’(2011)은 테라코타, 신상호의 ‘토템상’(2004)은 도자다.
미술관은 전통을 현대로 접목·확장하면서 다양한 매체의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라고 말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최초로 채색화를 재조명함으로써 기울어진 한국미술사의 균형을 맞추려고 한다”고 했다.
미술관은 채색화의 주제나 재료보다 ‘역할’에 주목했다고 한다. “나쁜 기운을 몰아내고(辟邪, 벽사) 복을 불러들이며(吉祥, 길상) 교훈을 전하고(文字圖, 문자도)” 같은 한국 채색화의 전통적 역할을 현대 미술에서 찾는 시도라는 취지로도 설명했다. ‘부적’을 모티브로 한 안성민의 ‘날아오르다’(2022)가 미술관이 내세운 채색화 역할과 취지에 부합하는 작품의 한 예다. 아프리카 미술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토템상’을 두고는 “온갖 석상과 장승, 솟대 등의 조형물로 벽사와 길상의 의미를 담아온 한국의 전통과 아프리카의 원시적이고 과감한 아름다움을 결부한 작품”이라고 했다.
특별전은 채색화 중에서도 민화를 강조한다. 아카이브 섹션엔 서영희가 ‘2022년 호랑이의 해를 위하여’라는 제목으로 ‘보그 코리아’ 2022년 1월호에 실은 사진(오른쪽 4개 패널 ) 등을 전시했다. 왼쪽(1개 패널)은 구본창이 디자이너 진태옥의 패션 작품을 촬영한 사진. 김종목 기자
특별전은 채색화 중에서도 민화를 강조한다. ‘소환된 민화, 한국미술을 흔들다’(김용철), ‘현대 민화, 전통 채색화의 부흥’(정병모), ‘민화를 보는 또 하나의 시선: 이우환의 민화론과 민화 컬렉션’(서윤정), ‘한국 현대미술에서 민화의 이코노그래피-현대미술의 창작 원천으로서의 민화’(조은정)를 전시 도록에 실었다. 현대 작가 10여 명의 민화 작품도 소개한다. 아카이브 섹션엔 서영희가 ‘2022년 호랑이의 해를 위하여’라는 제목으로 ‘보그 코리아’ 2022년 1월호에 실은 사진 등을 전시했다. 미술관은 “민화가 품고 있는 조형적 패턴, 해학적 그림, 화려한 색감을 활용함과 동시에 패션 상업 사진과 결합하여 민화의 지평을 확장한다”고 설명했다.
국립현대미술관 ‘한국의 채색화 특별전’에서 여러 매체 작품을 내놓았다. 테라코타 작품인 한애규의 ‘기둥들’(2011, 위 사진)과 도자 작품인 신상호의 ‘토템상’(2004). 김종목 기자
전시장 관람 동선을 오래된 한옥을 방문하듯 짰다. 한국 전통 정원과 서가의 공간 개념도 전시장에 구현했다. 전시장 입구와 중간 통로에 각각 ‘토템상’과 ‘기둥들’을 설치했다.
미술관 전시 취지와 내용에 미술계가 다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전통의 ‘확장’과 ‘확대’, ‘재조명’인지, ‘자의적 해석’과 ‘탈맥락’인지를 두고 여러 말이 나온다. 김달진미술연구소 소장 김달진은 지난달 31일 유튜브에 올린 ‘미술계 소식’에서 미술관이 내세운 ‘채색화의 정신 확대’에 의문을 제기하며 “(특별전이) 채색화 경계를 허물겠다는 의도인지, 타 장르를 포함한다는 의미인지 혼란스럽다. 장르 확대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자의적 해석이 확산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도 들었다”고 말했다.
미술평론과 황정수는 페이스북에 “전시 기획을 하려면 기본적으로 ‘채색화’에 대한 개념 정의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식의 나열이라면 ‘채색화’는 ‘색깔이 있는 모든 미술품’이란 뜻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썼다. 그는 “조계종 종정의 정체 모를 작품은 언제부터 한국의 대표적 채색화이며, 박대성은 또 언제 채색화의 주요 인물이 되었으며, 어느 화랑 소속 젊은 화가들의 알록달록한 유화는 어인 일로 등장하는가”라고 했다.
‘한국의 채색화 특별전’은 전통을 활용한 현대 작품들을 내놓았다. ‘벽사’나 ‘길상’ 같은 채색화의 역할도 주목했다고 한다. 부적을 모티브로 한 안성민의 ‘날아오르다’(2022, 왼쪽부터), 고대의 신성을 표현한 김종원의 ‘문(問)’(2021)과 ‘암(闇). 김종목 기자
미술계 인사 A씨는 “채색화와 거리 있는 다소 뜬금없는 작가의 뜬금없는 작품들이 나온 대목은 이해 또는 동의하기 어렵다. 미술관은 ‘민화’와 ‘길상’ 등을 강조했는데 그런 취지를 따르더라도 중광이나 김태정, 이영수, 이중희, 이석조 같은 1970~1980년대 주요 작가들이 빠진 건 매우 아쉬운 대목이다. 전통 민화를 모작하는 수준의 작가들도 보인다”고 했다. 그는 몇몇 작가를 두곤 “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이력‘을 만들어주려는 배려 차원에서 특정 갤러리 소속 작가를 선정했다고 지적하면 미술관 측이 어떤 대답을 내놓을지도 궁금하다”고도 했다.
‘한국의 채색화 특별전’ 특징 중 하나는 대형 작품들을 많이 내놓았다는 점이다. 검은 색 작품들도 전시했다. 왼쪽부터 홍지윤의 ‘접시꽃 들판에 서서’(2014), 전혁림의 ‘백락병’(2001), 김은주의 ‘가만히 꽃을 그려보다’(2011). 김종목 기자
특별전은 9월 25일까지다. ‘채색화’를 어떤 개념과 맥락에 놓고 해석했든 한국 미술사에 기록된 여러 대가의 작품을 볼 기회다. ‘강렬한 색상’과 ‘다양한 매체’로 ‘대형화’하고 ‘현대화’한 개별 작품들은 ‘볼거리’이기도 하다. 진주의 흐름전도 19일까지 열린다. 이 전시는 고대와 근현대 미술사에 근거한 정통의 채색화가 주다. 이례적으로 70여 일간 5만8000명(5월 31일 기준)이 관람했다. 국공립미술관과 국립박물관의 두 전시로 ‘채색화’가 올해 상반기 미술계 키워드 중 하나가 된 건 분명하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경향신문 2022.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