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독일 수교 140주년을 기념해 두 나라의 100여 년에 이르는 미술 교류 역사를 작품과 자료로 조명하는 《한국독일미술교류사 : 어두운 밤과 차가운 바람을 가르다》 전이 내년 1월 27일까지 서울 종로구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에서 열립니다.
전시는 1980년대에 독일 현대미술전을 기획한 박래경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의 1950년대 독일유학 시절 아카이브와 배운성(1901~1978), 백남준(1932~2006), 안규철(1955~) 그리고 뮌(1972~)과 같이 독일을 배경으로 자신의 작품세계를 구축한 한국작가들의 작품으로 구성됩니다.
여기에 더해 한국미술사를 최초로 통사(通史)로 기술한 독일의 한국학자 안드레아스 에카르트(Andreas Eckardt, 1884-1974)의 『Geschichte der koreanischen Kunst』(한국미술사, 1929)와 한국과 독일에서 교류전으로 개최된 미술 전시자료 등도 함께 선보입니다.
배운성은 한국인 최초의 독일 미술유학생으로 1923년 레겐스부르크미술학교에 입학해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때까지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에서 작품 활동을 했습니다.
전시 출품작 <모자를 쓴 자화상>(1930년대)은 베를린의 어느 카바레를 배경으로 박수 무당 복장을 한 배운성의 자화상입니다. 한국 풍속을 소재로 서양미술의 구도와 화법으로 그려진 이 작품은 당시 유럽에서 보기 드문 동양인 화가로서 성공해 명성을 얻게 된 작가의 높은 자의식을 보여줍니다.
백남준은 1957년에 뮌헨대학교와 쾰른대학교 등에서 서양의 건축, 음악사, 철학 등을 공부하고 1958년 프라이부르크 고등음악원으로 전학했습니다. 같은 해에 존 케이지를 만나 그로부터 깊은 영감을 얻게 됩니다.
출품작 <존 케이지에게 보내는 경의 : 테이프와 피아노를 위한 음악>(1958-1962)은 1959년 독일 뒤셀도르프 갤러리22에서 선보인 백남준의 첫 퍼포먼스인 동시에, 이때의 소리 콜라주를 녹음한 릴 테이프 오브제 작품입니다.
퍼포먼스에서 백남준은 피아노를 연주하고, 넘어뜨리고, 라디오와 녹음기로 비명과 뉴스 소리를 내보내고, 유리병을 깨뜨리는 등 과격한 행위를 합니다. 백남준은 이를 “무음악” 공연이라고 칭하는데, 이는 자신의 퍼포먼스를 아르놀트 쇤베르크의 ‘무성조’ 음악, 존 케이지의 ‘무작곡’ 음악의 계보 위에 둔 것입니다.
이 밖에 1970년대 고도 경제 발전 시기와 1980년대 민주화를 거치면서 다원화된 환경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며 그 안에서 자신의 예술세계를 구축한 안규철과 뮌의 작품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관련 자료로는 ‘조선이 나은 천재화가 배운성씨의 예술’(『사해공론』 1936년 1월호)과 안드레아스 에카르트(한국명 옥낙안)가 기고한 ‘제2 조국 한국이여 빛나라’(『신태양』 1958년 6월호) 잡지를 전시합니다.
또 배운성의 친구였던 쿠르트 룽게(Kurt Runge)가 펴낸 『Un-soung PAI Erzählt Aus Seiner Koreanischen Heimat』(배운성이 들려주는 한국이야기. 1950)와 1993년 베네치아비엔날레 독일관 대표로 참여한 백남준 전시의 도록 『Nam June Paik : eine DATA base』(백남준 : 데이터베이스, 1993), 우리나라에서 열린 1957년 <현대독일건축전>, 1958년 <현대독일판화전>, 1959년 <독일판화작품전>, 1972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된 첫 <현대독일미술전>과 1984년 한국문예진흥원 미술회관의 <독일조각의 오늘-3차원성> 자료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전시 연계 온라인 세미나가 11월 한 달 동안 매주 목요일 개최됩니다.
11월 3일에는 ‘2010년 이후의 한국과 독일 미술교류 전시 사례’를 주제로 독일 뒤셀도르프 블룸(Bloom) 운영자인 변지수 씨, 10일에는 ‘한국에서의 경험과 자신의 작품세계’를 주제로 한국에서 생활하며 작품 활동을 하는 올리버 그림(Oliver Griem)과 잉고 바움가르텐(Ingo Baumgarten), 17일엔 ‘독일에서의 경험과 자신의 작품세계’를 주제로 작가 안규철과 샌정, 24일에는 ‘사업의 성과와 한계, 향후 계획’에 관해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학예사 김정현이 각각 발표합니다.
참여 신청은 박물관 누리집(daljinmuseum.com)에서 하면 됩니다.
김달진 관장은 “1990년대 이후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기술 발전으로 우리 삶의 아주 작은 영역까지 세계화된 것도 30여 년의 시간이 지났다.”면서, “오늘날의 상황에서 새로운 한국미술사 서술 방향을 과거의 기록과 작품, 자료를 통해 고민하며 ‘교류’라는 용어 안에 담긴 ‘다양성’과 ‘타자성’에 집중해 기획한 사업”이라고 밝혔습니다.
김석 기자 stone21@kbs.co.kr
KBS 2022.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