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미인 : MBC김지은 아나운서가 만난 스물한 명의 젊은 화가들
- 청구기호650.4/김78ㅅ
- 저자명김지은 지음
- 출판사파주:아트북스
- 출판년도2004년
- ISBN8989800390
- 가격16500원
“그림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맨 지 어언 12년이 되었다. 미래의 고흐를 미리 발견해낼 수는 없을까?”
첫 월급으로 미술품을 구입한 후 12년 동안 미술품을 컬렉팅해온 MBC 김지은 아나운서가 젊은 작가 21명의 작품세계를 소개한다.
‘아토마우스’의 작가 이동기에서부터 극소의 조형작품을 선보이는 함진까지, 뼈가 으스러지도록 사랑한 동시대 젊은 작가들의 발랄한 작품세계와 불온한 내면세계를 흥미진진하게 조명한다.
아나운서로서의 체험과 예술학 전공자로서의 전문성이 어우러진 단단한 필력으로, 작품의 다채로운 표정을 유려한 언어로 포착한다. 그것은 작품에 관한 것이면서, 작품과 교접하는 지은이 마음의 풍경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독자는 그 마음의 풍경을 통해 작품의 심연을 답사하고, 나아가 더 많은 작품/작가와 만나게 된다.
이 책은 젊은 작가들의 무대이다. 기존의 조형어법에 안주하지 않고 젊은 작가다운 패기와 열정으로 자기만의 스타일을 모색 중인 그들의 작품세계가 평면/입체작품, 사진조각, 퍼포먼스, 설치작품, 입체판화 등 다채롭게 펼쳐진다.
그런 만큼 이 책에는 미술 읽기의 즐거움이 함께 한다. ‘한젬마’ 류의 가벼운 미술에세이에서 한 차원 업그레이드된 미술에세이를 맛보고 싶은 독자, 재미없고 난해한 미술평론에 주눅이 든 독자, 동시대 젊은 작가들의 작품세계와 고민을 알고 싶은 독자, 그리고 미술에 매료된 한 아나운서의 예술행복지수가 궁금한 독자들을 위한 책이다.
지은이는 말한다.
“작품에 숨겨진 작가의 눈을 발견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작품을 본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작가의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내 마음에 간판을 달고_배성미」중에서)
책 출간과 관련된 부대행사도 마련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작가와 작품을 직접 접할 수 있는 전시회를, 10월 12일(화)부터 19일까지 인사동 ‘노암갤러리’에서 갖는다.
김지은―아나운서, 미술품컬렉터, 예술학도
지은이는 MBC뉴스데스크, 출발 비디오 여행, 라디오 ‘음악에세이, 사랑이 있는 곳에 김지은입니다’를 거쳐 현재 ‘즐거운 문화 읽기’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수많은 미술품을 수집해온 컬렉터라는 점은 알려져 있지 않다. 1992년 방송국에 입사하여 첫 월급을 털어서 미술품을 구입한 후, 12년 동안 많은 미술품을 컬렉팅해온 그는 열렬한 미술애호가이자 예술학도이기도 하다. 서울대 독어교육과를 졸업했음에도 불구하고 뒤늦게 홍익대 대학원 예술학과에 입학하여 현재 졸업을 앞두고 있다. 미술작품과 직접 만나면서 무르익은 애정이 결국 전문성을 겸비한 미술 전문가로 거듭나게 한 것이다.
이런 정보는 지은이의 미술에세이가 한 유명 아나운서의 단순한 외도가 아님을 증명한다. 또한 단단한 사유로 숙성시킨, 유려하면서도 발랄한 문장은 그것만으로도 진가가 빛난다.
왜 ‘서늘한 미인’인가?
그렇다면 왜 제목이 ‘서늘한 미인’일까? 미모인 자기 자신을 지칭한 것일까? 아니다. ‘서늘한 미인’은 미술작품을 상징한다.
“미술은 우선 말 붙이기가 힘들죠. 왠지 어려워 보이잖아요. 그렇지만 한번 알고 나면 자꾸만 보고 싶은 미인 같아요. 특히나 한국의 젊은 미술은……. 그래서 신중현의 노랫말처럼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고 싶어지는데…… 그런데, 뒤돌아서고 나면 가슴이 서늘해져요. 거대 담론이 아니면서도 사소한 일상으로 기존의 가치체계와 고정관념 등을 교란시키는 전복성향을 표면 밑에 숨기고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해요.”
그는 이런 생각으로 개성적인 작품세계를 펼치고 있는 작가 21명의 ‘서늘한 미인’들을 소개한다. 그리고 그 ‘서늘한 미인’들의 대한 밀도 있는 애정 고백으로, 독자를 작품으로 유혹한다. 알고 보면 그들이 얼마나 발랄하고 따뜻한지, 일단 말을 걸어보라는 것이다.
작품에 의한, 작품을 위한 ‘즐거운 미술 읽기’
1)왜 지은이와 작가에 대한 자세한 약력을 생략했나?
이 책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의 하나는 지은이와 작가에 대한 구체적인 약력의 생략이다. 왜 그랬을까? 이는 “작품을 보는데 방해가 되는 요소를 가능하면 없애”서, 작품만 봐주었으면 하는 지은이의 생각을 담고 있다. 즉 각 작가마다 소개된 풍부한 도판으로 작품을 먼저 감상하되, “작품 감상에 군더더기일지 모르는” 자기 글을 단순한 보조 자료로 읽었으면 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글 뒤에 붙인 작가소개 난에도 반영되어 있다. 이 작가소개 난에는 작가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없는 대신 메일이나 홈페이지 주소가 적혀 있다. 이는 화보와 글을 음미한 뒤, 작가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와 더 많은 작품을 알고 싶으면 작가의 홈페이지를 직접 방문하라는 것이다. 지은이는 작품과 독자를 유혹하고 맺어주는 ‘삐끼’이자 ‘커플매니저’의 역할에 그치고자 한다. 하여 이 책은 작가의 학력과 수상경력, 전시회 경력을 잔뜩 늘어놓는 일반적인 작가소개 관행을 거부한다. 이런 작품 외적인 선입견 없이 작품과 일대일 대면을 해보라는 것이다.
2)왜 젊은 작가만 다루었나?
일반인들은 ‘화가’ 하면 레오나르도 다빈치, 반 고흐, 피카소, 샤갈, 달리, 이중섭, 박수근, 백남준 등을 떠올린다. 모두 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인물들이다. 그 많은 젊은 예술가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강영민, 이태경, 황혜선, 낸시 랭, 문경원, 권오상, 권소원, 박은선, 여동헌, 이동기, 이점임, 이유정, 노재운, 김순례, 정수진, 김정욱, 함진, 홍인숙, 배성미, 최우람 등의 우리시대의 고민을 조형언어로 풀어내는 젊은 작가들은 제외되어 있다. 지은이의 말처럼 이들은 미래의 피카소이자 이중섭, 백남준일 수 있다. 그런 만큼 이 책은 젊은 작가들의 무대이다. 그들은 지금, 여기, 이곳에서 호흡하는 젊은 세계관이다. 그들은 되어가고 있는 이들이지, 완성된 이들이 아니다. 이들의 작품세계를 들여다보는 것은 동시대 작가들의 재기발랄한 조형세계와 고민에 동참하는 일이다. 그 고민과 더불어, 현실과 교감하는 젊은 작가들의 눈높이 조형세계를 통해 자기 내면으로 침잠할 수 있다. 그래서 지은이는 “말붙이기 힘든 서늘한 미인 같은 오늘날의 미술. 하지만 말을 한번 걸어보면 서늘한 미인으로 보였던 그들이 얼마나 따뜻하고 재치 있는 미인인지 알게 된다”고 한다.
3)왜 ‘작품도판+미술에세이’식 구성인가?
이 책의 ‘구성’은 주목을 요한다. 개별 작가의 풍부한 도판을 앞에 배치하고 그 뒤에 글을 실었다. 이는 책의 주인공이 ‘작품’임을 의미한다. 반대로, ‘미술에세이+작품도판’식 구성일 경우에는 지은이의 글에 의해 작품의 의미가 하나의 이미지로 고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은이는, 자기 글은 작품에 대한 사적인 애정고백이자 많은 작품감상 중의 하나일 뿐이라며, 한사코 뒤로 물러선다. 대신 독자에게 일체의 선입견 없이 자기만의 시각으로 작품을 보고 즐기라고 한다. 즉 작품 도판→지은이의 글→작가 홈페이지로 이동하여 작품과 직접 말 트기를 하라는 것이다.
4)글의 성격(대중성, 전문성)은 어떤가?
지은이의 글은 이를테면 난해한 미술평론과 가벼운 미술에세이의 중간쯤에 위치한다. 대중성을 지향하되 전문성을 배제하지 않고, 전문성을 가미하되 대중성을 잃지 않는다. 하여 그의 글을 두 글쓰기의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일종의 대안으로 보인다.
아나운서로서의 개인적인 체험이나 작가와의 만난 체험 등을 통해서, 절묘한 체위로 작품의 심연으로 입수한다. 아나운서로서 생방송의 실수담, 야한 성인영화 체험기, LA에서 반 고흐와의 운명적인 만남, 작품을 소장하는 기쁨 등이 작가들의 작품 이야기와 자연스럽게 녹아져서 글읽기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이런 체험+작품이야기는 탄성을 자아내게 할 만큼 리드미컬하게 연결된다. 그러니까 이런 글은 불특정 다수의 시청자를 상대하는 아나운서로서의 대중성과 미술품컬렉터이자 예술학도로서의 전문성이 고르게 안배되어 있어, 쉽고 개성적이며 구체적이다. 그리고 미술평론가나 미술이론가 같은 타인의 안목에 의지하지 않고, 순전히 지은이의 맘대로 작품을 읽는다. 그렇다고 작가에 대한 신변잡기나 작품에 대한 감탄 일변도가 아니다. 정신분석 이론을 적용하여 작품에 나타난 의미를 확장하는가 하면, 한 작가의 작품세계를 소설식으로 재구성하여 흥미진진한 스토리라인을 부여하기도 하는 식이다. 이런 주체적 읽기는 작가와 작품에 관한 치밀한 관찰과 대화의 산물이다. 사유의 힘으로 견인되는 글쓰기, 그것은 잘 깎은 밤톨처럼 단단하면서도 먹음직스럽다. 고급한 미술에세이 읽기의 즐거움을 안겨준다.
5) ‘예술의 발견’의 재미?
일종의 ‘쉬어 가는 페이지’격인 ‘예술의 발견’은 순전히 지은이에 관한 흥미진진한 이야길 담고 있다. 그의 열정과 독창적인 안목을 유감없이 엿볼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자신의 아이디(ID)인 ‘미셸’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다룬 「미셸의 정체를 밝혀라」는 이국의 독자편지를 받고 답장을 보내온 ‘미셸 투르니에’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사진을 찍고 보낸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장님으로 천년, 눈떠서 천년」은 도자기에 반한 어느 골동상 할아버지 이야기를 통해 좋은 작품을 보는 법을 소개한다. 지은이의 예민한 안목은 「스위스에서 온 편지」에서도 확인된다. 스위스 여행중에 만난 한국인이 오랜 동안 수집한 한국의 고미술품이, 국내 감정결과 가짜였음을 알고는 이를 어떻게 알려줄까 고민하는 지은이와 이에 대한 수집가의 가슴 서늘한 답변은 독자를 숙연하게 만든다. 그리고 영화배우 안젤리나 졸리가 인터뷰에서 보여준 은밀한 문신 이야기를 담은 「안젤리나 졸리의 배꼽 아래」도 흥미롭기는 마찬가지다. 이들 이야기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강렬하다.
빛나는 사유와 통찰
이 책은 어디를 펼치든 지은이의 견고한 사유와 통찰이 돋보입니다. 이는 그만큼 작품과 교접하면서 오랜 동안 가슴속에서 이를 숙성시킨 덕분일 것입니다.
“저는 어떤 형태가 되었든, 관람자의 감정을 움직이는 작품이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건 사람마다 작품을 보고 느끼는 감정이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는 거겠죠.”(「원피스를 입은 남자_강영민」에서)
“그의 작품을 꼼꼼히 살펴본 사람들이라면 그가 작품들을 새로운 모습으로 선보일 뿐만 아니라 작품을 보는 새로운 눈까지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것입니다.”(「나는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것을 -기대한다_황혜선」에서)
“저는 그때 언뜻, 그림이 글이 될 수도 있고 글 또한 그림이 될 수도 있으며 작가는 자신에게 맞는 재료를 선택해서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표현해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뇌해에서 익사하지 않고 헤엄치는 법_정수진」에서)
“지금 생각하면 제게는 창호지문이 최초의 캔버스였는지도 모르겠네요. 그 캔버스 안에서 외부세계와 제가 하나가 되었던 놀라운 경험이 혹시 그림을 사랑하게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보기도 합니다.”(「이 미친 세상이 그녀에게 원하는 것_이유정」에서)
“가족이라는 말을 앞에 붙이는 것이 매우 자연스러웠던 그때, 방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그리던 정겹고 소박한 가족도. 그 안에서 우리는 바로 한때 자신이었던 아이의 초상을 발견하게 됩니다.”(「그리고 오리고 찍어낸 그리움_홍인숙」에서)
“재미있었던 것은 어른들이 신기하게 생각하는 작품이 아이의 눈에는 지극히 자연스럽게 느껴진다는 점이었습니다.”(「어른들을 낳은 아이들, ‘초영이의 친구들’_김순례」에서)
“우리가 어떤 사물을 보고 무엇인가를 기억하는 것은, 결국 그 사물이 기억의 조각들을 불러모으는 것과 같겠죠. 불러모으는 동안 기억의 조각들은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윤색되기도 하구요.”(「언제나 생방송중인 작품들_문경원」에서)
“한 사람의 역사는 말과 글이 아니라, 그 사람의 얼굴이 말해줍니다.”(「비극적인 너무나 비극적인 얼굴들_김정욱」에서)
“이점임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모든 요소는 관객 자신의 이야기에 힌트로 작용합니다. 마치 촉매처럼 수많은 이야기를 관객 개개인에게 촉발시킵니다.”(「당신이 있던 자리_이정임」에서)